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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암호화폐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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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호 35면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암호화폐(crypto currency)는 왜 어려운가. “암호” 때문인가 “화폐” 때문인가. 암호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화폐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첨단 블록체인과 암호과학으로 무장한 암호화폐는 정말 역사상 처음 나타난 과학기술기반 화폐일까. 암호화폐를 이해하려면 “닮음”과 “다름”을 보는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대에는 #인베슈머나 인베유저란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할 것이다 #미래 금융도 증권과 대출을 넘어 #새로운 화폐 사업으로 확대될 것

시대를 불문하고 새로운 화폐는 항상 신비롭다. 뭔가 베일에 가려져 있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신비로워야 매력이 있고 열광적 팬들도 생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 기법은 첨단과학이고 이것이 뒷받침하는 화폐가 암호화폐다. 과연 암호화폐는 기존 화폐들과 본질이 다른 화폐일까. 과거 역사를 보면 어느 시대든 그 시대의 첨단과학을 화폐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있어왔다.

1932년 존 노튼(john Pease Norton)이 주장한 전기화폐(Electric Dollar)가 대표적 예다. 처음으로 미국에서 전기가 대중화되어 라디오와 냉장고가 집안에 들어오던 시대다. 동네 사람들끼리 만나서 얘기 나누는 것이 전부요, 아이스박스에 음식 보관하던 시대에 라디오와 냉장고는 그야말로 충격이요 신비로운 첨단기술이었다. 전기는 보이지도 않고, 어떻게 작동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현재 논의되는 블록체인기술과 비슷하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예일대 로버트 쉴러 교수가 말했듯이, 첨단과학의 뒷받침을 받는 화폐가 진정 화폐로서 성공하려면 신비로운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암호화폐도 비약하려면 바로 이 신비스러운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

달라 보이지만 같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가장 흔히 듣는 용어가 토큰(token)과 코인(coin)이다. 코인과 토큰이란 용어는 원래 블록체인기술에서 생겨난 개념이 아니다. 과거부터 있던 개념이다. 지금 40~50대 분들이 잘 아는 버스토큰과 본질은 같다. 버스토큰을 사면 종로에서 여의도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버스노선이란 네트워크에서 이동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권한이 버스토큰이다. 블록체인 플랫폼에서 특정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앱을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이 블록체인 토큰이다. 둘 다 이용 권한을 나타내는 증표다.

이에 반해 코인은 돈 즉 화폐다. 500원 코인도, 1달러 코인도 모두 화폐다. 코인은 화폐이기 때문에 토큰처럼 특정한 서비스만 살 수 있는 게 아니라 쓸 수 있는 범위가 블록체인 생태계 전체로 확장된다. 화폐가 되기 위해선 특정한 생태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경제 생태계를 전제로 하는 원화든, 아마존 생태계를 전제로 하는 아마존 코인이든, 이더리움 생태계를 전제로 하는 이더(Ether)든 말이다. 만일 토큰세일(ICO)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자기 스스로의 블록체인 플랫폼을 만들면 이젠 스스로의 독자적 생태계를 갖추었으니 코인 즉 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 투자들에게 기존 토큰을 코인으로 바꾸어 줄 수도 있다. 버스 탈 때만 쓸 수 있는 버스토큰을, 호텔·식당·열차 등 여행생태계 모두에서 쓸 수 있는 여행코인으로 바꾸어 준다는 말과 비슷하다.

암호화폐의 전제가 되는 블록체인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딱 두 가지 유형의 블록체인만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완전히 분산된 공적 블록체인과 접근이 허용된 주체들만 접근할 수 있는 사적 블록체인인 말이다. 틀린 말이다. 두 개는 블록체인 양극단의 두 점일 뿐이다. 양자 사이에 중간 형태인 블록체인이 무한히 많다. 마치 주식과 부채가 증권의 양극단이고 그 중간에 전환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와 같은 다양한 혼합증권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기업은 자신의 사업기밀을 모두에게 공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전문투자자라면 투자전략을 밝히길 당연히 꺼릴 것이다. 무조건 공개하고 밝히는 것만이 최적은 아니다. 사용자에 따라 최적 부채비율처럼 최적 공개비율이 존재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주목하는 것은 당연히 사적 블록체인이다.

인터넷이 발전하고 3D 프린팅이 가능한 시대엔 소비자(consumer)와 생산자(producer)가 합해져 프로슈머(prosumer)란 말이 생겼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대엔 굳이 용어를 만들자면 투자자(investor)와 소비자(consumer)가 합해진 인베슈머(invesumer) 혹은 투자자와 이용자(user)가 합해진 인베유저(inveuser)란 개념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탈중앙화 앱 즉 댑(Dapp)에서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가 곧 토큰과 코인의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미래 금융사의 비즈니스는 증권이나 대출을 넘어 화폐비즈니스로 확대될 것이다. 물론 여기서 화폐는 법정화폐가 아니다. 새로운 생태계를 갖는 새로운 화폐다.

김형태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전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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