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의 외침 "이란인 친구도 똑같은 사람, 난민 인정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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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호 면

‘우리만 살기 좋은 대한민국? 모두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세요’

‘여러분의 지인이라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인 이란 출신 학생이 기독교로 개종해 난민을 인정받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19일 서울 목동 서울남부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었다. 신인섭 기자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인 이란 출신 학생이 기독교로 개종해 난민을 인정받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19일 서울 목동 서울남부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었다. 신인섭 기자

19일 방학식을 마친 서울의 한 중학교 학생들 50여 명이 양천구 출입국사무소로 향했다. 이란인 국적 친구 A군을 위해서였다. “난민으로 인정, 한국 체류를 허용해 달라”는 A군의 2년 여 ‘분투’에 힘을 보태는 차원이었다. 오후 2시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은 이들에게 중요치 않았다. 직접 쓴 글귀가 담긴 팻말을 들었다. 구호는 없었다. 대신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가수 이한철씨의 노래 ‘수퍼스타’를 불렀다.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난민 불인정돼 출국 앞둔 친구 #한국 체류 허용해 달라고 청원 #"난민 목적 기독교 개종 아닌데... #이란 돌아가면 박해받을 수도 #편견에 가려진 진실 봐줬으면"

A군은 이날 난민재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는 “이런 친구들이 있어 너무 고맙다. 매일매일 고맙다고 하고 은혜를 갚아도 한참 부족할 정도”라고 말했다.

A군은 2010년 7월 아버지와 한국에 왔다. 이듬해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나가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2016년 6월 서울출입국사무소에 난민신청을 했다.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이란으로 돌아갈 경우 개종에 따른 종교적 박해의 위험이 있다”고 여겨서였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소송전이 벌어졌다. 1심에선 승소했으나 2심에서 패소했다. 2심 재판부는 “적극적 포교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박해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어렵고, 14세인 점을 감안하면 확고한 신념으로 종교를 선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5월 30일 대법원의 판결로 '난민 불인정' 결정이 확정됐다. A군은 9월 말까지 출국해야 하는 처지로까지 몰렸다.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인 이란 출신 학생이 기독교로 개종해 난민을 인정받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19일 서울 목동 서울남부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었다. 난민 신청을 한 이란 출신 학생이 출입국 외국인사무소 별관에 난민 인정 신청서를 접수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신인섭 기자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인 이란 출신 학생이 기독교로 개종해 난민을 인정받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19일 서울 목동 서울남부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었다. 난민 신청을 한 이란 출신 학생이 출입국 외국인사무소 별관에 난민 인정 신청서를 접수하기 위해 들어가고 있다. 신인섭 기자

이 같은 사정이 알려지자 삼삼오오 친구들이 나섰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A군을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는 글이 올랐는데 같은 반 여학생이 쓴 것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분개했습니다. 너무 억울했습니다. 이란으로 가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소리소문없이 사라진다는 기독교 개종자들. 풀이 죽어 있는 친구를 보며 너무 가슴이 아팠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 암울했습니다. (중략) 저는 진정 묻고 싶습니다. 3만 달러 시대라고 하는 우리 대한민국이 정말 제 친구 하나를 품어줄 수 없는 것인지” (7월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글 중) 

제주에서의 예멘인 이슈로 난민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논쟁이 벌어진 가운데 일이다. 이들 동료 중학생은 A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직접 들어봤다.

“우리와 같이 공부하고 자라온 친구”

-청와대 청원을 쓴 B양

“일단 제 친구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으니…. 친구들이랑 선생님이 OOO를 도와줄 정보를 찾고 있었는데 회의 중에 청원서를 쓰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토론한 내용을 제가 대표로 글을 쓰고 선생님이 오류를 잡아주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돕고 싶은 마음에…. 악성 댓글도 달렸지만 예상한 결과라 괜찮아요. 요즘 (예멘) 난민 이슈가 되게 안 좋으니까. 하지만 예멘 건과 이건 다른 문제인 듯해요. 제가 판결문을 다 봤는데 제 친구는 충분히 난민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편견으로 불신당하고 해서 (난민 인정이) 안 된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OOO랑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예요. 위협이 되는 존재라기보다 그저 우리와 같이 공부하고 같이 자라온 친구예요. 친구가 사회적으로 약자니까 무시하고 편견을 갖고 당하는 것 같은데 저희랑 똑같은 사람이에요. 인권을 존중받고 교육도 받아야 하고 박해를 받으면 안 되는 그런 하나의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서 난민 인정되는 비율은 낮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는 9942명 중 121명으로 2.0%에 그쳤다. 서울행정법원의 경우 지난해 3364건의 난민 소송 중 난민으로 인정한 것은 6건(0.17%)이었다.

#“1학기 우리 반 학급회장인 소중한 친구”

-A군 위해 뛰는 C양

“대법원 판결 이후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있구나’란 걸 다 알게 됐어요. 그러다 교무실에서 OOO과 둘이서 얘기를 나누게 됐어요. ‘출국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하더라고요. 가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청원 얘기가 나왔지요. 청원에 동의를 받는 운동도 했어요. 3학년생의 3분의 2가 참여했고 1, 2학년생들도 도왔어요. 판결문에 ‘14세 이하라 개종의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OOO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헌금도 기도도 원할 때 할 수 있고 그렇게 종교의 자유를 느껴서 교회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어요. 난민 신청하려고 개종한 게 아니라 믿어온 건데…,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과 다른) 인터넷 댓글에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도 않고, 오해를 하나씩 직접 풀어줄 수도 없는 건데, 그래도 이 친구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청원한 이후에 악플이 많이 달렸어요. 반대 입장을 가질 수 있지만 욕설이나 사실이 아닌 거로 상처 되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중학생밖에 안 된 것들이 나서서 청원을 올리냐'는 얘기도, '어른들이 아이들까지 선동해서 이런 것까지 해결하려 한다'라고도 하더라고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한 건데…. 청원 운동을 위해 카카오톡 단체 방(단톡방)을 만들었는데 처음엔 서로 악플 얘기를 많이 주고받았어요. 그러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말이죠. 피켓도 직접 만들었어요. OOO이 1학기 학급회장이어서 누군가 ‘우리 반 회장을 살려주세요’라고 썼더라고요. 난민에 대해 부정적 뉴스만 보고 난민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있지 않나 싶어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인 이란 출신 학생이 기독교로 개종해 난민을 인정받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19일 서울 목동 서울남부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었다. 신인섭 기자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인 이란 출신 학생이 기독교로 개종해 난민을 인정받지 못하면 위험할 수 있다며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19일 서울 목동 서울남부출입국 외국인사무소 앞에서 열었다. 신인섭 기자

실제 청원 글이 올라가고 난 뒤 ‘동의합니다’란 찬성 댓글도 있었지만 ‘한국 국민이 먼저다’, ‘종교 박해를 빙자한 난민 유입 어떻게 막나’ 등 반대 글이 쏟아졌다. 140여 명이 속한 단톡방에서 학생들은 서로를 다독였다고 한다. “힘내라 친구야”, “악플 단다고 우리 안 할 거 아니잖아”, “꼭 살려야지. 낙담하긴 아직 이르잖아”, “다 같이 기적을 만들어보자”고 위로했다고 한다.

#“나라 잃은 마음, 전쟁으로 갈 곳을 잃은 마음으로 바라봤으면….”

-A군과 가까운 친구인 D군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입장보다 대중들의 인식이 화가 납니다. 난민이라고 무조건 필요 없다고 나가라는 부분이요. OOO는 한국에서 9년 동안 살아왔고 그만큼 한국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고 이슬람 문화와는 거리가 먼 친구예요. 너무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그렇기 때문에 예멘 난민과는 다른 문제라고 봐요. 사실 예멘 난민을 두고도 ‘가짜다, (난민) 아니다’는 얘기가 많이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전쟁으로 나라를 잃은 딱한 처지인 사람들 아닌가요. 우리도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신 그만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물론 난민에 반대하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저는 그분들이 좀 더 난민의 입장에서 바라봐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잃은 마음, 전쟁으로 가야 할 곳을 잃은 마음, 그런 마음으로 좀 더 바라봐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들 중에 몇몇이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죄 없는 사람들을 전부 죽음으로 몰아가야 하는것이냐는 생각도 해요.”

A군은 이런 친구들이 한없이 고맙다. “법원에서는 받아들여 주지 않던 내 생각을 친구들은 들어줬고 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어요. 친구들의 말과 눈빛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예요”
A군은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편견에 가려져 있는 진실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난민이야?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쟤네 다 거짓말이잖아. 뭐로 믿냐. 개종하면 난민이냐(난민으로 인정받느냐). 나도 난민이겠네’라고 한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며 “정말 그런 법(타 종교로 개정하면 박해)이 있어서 공포감에 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로 인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모델이 꿈이라 모델 워킹을 배웠는데 (한국에 남아 나이지리아계 한국인 남자 모델인) 한현민처럼 런웨이에 서는 게 소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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