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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역전할 것" "반전 없다" 오세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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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일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당선된 강금실 후보가 경쟁 상대인 이계안 의원과 함께 손을 들어 청중에게 답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서울시장 선거의 대진표가 확정됐다. 열린우리당(강금실)과 한나라당(오세훈) 모두 참신과 탈정치적 이미지의 변호사 출신 후보를 택했다. 1000만 인구와 15조 예산을 다루는 서울시장 선거는 5.31 지방선거의 하이라이트다. 여야 모두 다음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기고 '올인'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시장 후보가 되기까지 강.오 두 후보가 걸어온 길을 살펴봤다.

할 말은 하는 '소신' 강조
지지율 차 극복이 과제

과천 법무부 대회의실 벽면엔 역대 장관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양복에 넥타이 차림을 한 엄숙한 표정의 남자가 대부분이다. 그중 하나, 활짝 웃는 여자 사진이 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 강금실이 그 주인공이다. 강금실의 이름 앞에는 수많은 '최초의 여성'이 따라다닌다. 최초의 여성 형사 단독 판사, 최초의 여성 법무법인 대표,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 그리고 이제 그는 최초의 여성 여당 서울시장 후보가 됐다. 그런 그는 '원칙'과 '소신'을 늘 강조한다.

◆ 검찰 개혁 선봉장 된 문학소녀=경기여고 시절 그의 학업성적은 늘 수위였다. 그렇다고 교과서만 파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철학과 문학을 좋아했고, 시인을 꿈꿨다고 한다.

1975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춤을 좋아해 교내 서클인 탈춤반에 들어갔다. 그러나 춤추는 일보다 데모하다 구속된 선배들을 면회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면서 사회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 운동권 출신인 전 남편 김태경(출판인)씨와의 결혼도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93년 '사법파동' 때는 '평판사 회의'를 주도하며 대법원장에게 사법 개혁 건의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강 후보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 되면서다. 기수 중심의 검찰을 개혁하기 위한 선봉장으로 노 대통령은 강 후보를 내세웠다.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은 강 후보의 사법시험 10년 선배였다. 검찰의 반발이 컸다. 그러나 강 후보는 검찰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을 받는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 열린우리당 '구원투수'=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뒤 강 후보에겐 정치권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단호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발벗고 나서 '구원투수'로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고민 끝에 강 후보는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 자신보다 늦게 출마 선언을 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강 후보를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 한참 뒤지는 당 지지율도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출마 선언 당시 "정체성만 지킨다면 아름다운 패배도 좋다"던 그였지만 최근엔 "역전을 이뤄낼 거다. 반드시 이기겠다"고 말한다. 강 후보의 이름 앞에 '최초의 여성 서울시장'이 붙을 수 있을까. 4주 뒤면 결판이 난다.

이가영 기자<ideal@joongang.co.kr>

'클린'과 '용기' 내세워
'웰빙' 이미지 벗는 게 숙제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오세훈답다'란 말을 즐긴다. 그가 말하는'오세훈다움'은 '클린(청렴)'과'용기'다. 환경운동과 정치관계법 개혁을 주도하고, 17대 총선 불출마로 얻은 이미지다. 45세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그에겐 정치적 밑천이다. 그러나 '웰빙' '유약함'으로 통용되는 또 다른 '오세훈다움'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선거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정치적 과제다.

◆ 얼짱 변호사에서 승부사로=그의 정계 입문은 2000년 16대 총선 때다. '젊은 피'수혈 경쟁 분위기에서 그는 한나라당의 영입 1순위였다. 환경운동과 TV 출연으로 유명한 얼짱 변호사. 그는 1998년 예일대로 연수를 떠났다.

귀국 후 국회의원과 대학 교수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정치의 길을 택했다. 환경재단 대표 최열씨가 "환경을 이해하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권유한 게 주효했다. 그러나 강남을 지역구에서의 화려한 데뷔와 달리'국회의원 오세훈'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그가 정치인으로 한 계단 성장한 것은 17대 총선을 3개월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다. 정치를 떠나면서 정치적 무게가 커진 일종의 역설이다. 이즈음 그에겐 국회 정치개혁특위 간사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는 당 안팎의 견제를 뚫고 '오세훈 정치개혁법'을 주도해 정치인들의 돈줄을 조였다. 17대 총선이 비교적 깨끗하게 치러진 뒤 그의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그가 서울시장을 염두에 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논란에 대해 정병국 의원은 "정치를 떠난 것은 제스처가 아닌 당 개혁을 위한 솔선수범 차원"이라고 말했다.

◆ 오세훈은 웰빙족? =지난해 말 오 후보는 한나라당 소장파들과 저녁 약속을 했다. 그런데 오 후보가 "얼마 전 마누라가 얼음판에서 미끄러져 도저히 못 나간다"고 통보했다. 의원들이 "다리 조금 다친 것을 가지고 왜 옆에 있어야 하느냐"고 다그쳤지만 꿈쩍도 안 했다. 이런 가정적인 모습이 간혹'웰빙족'이란 오해를 사곤 한다. 그러나 남경필 의원은 "자기 할 일을 안 하는 '나쁜'웰빙족이 아니라 맡은 일을 다하며 가족과의 여가를 즐기는 긍정적인 웰빙족"이라고 말했다.

오 후보는 "내가 더 오랫동안 충실하게 준비해 왔기 때문에 강 후보와 토론을 하면 할수록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며 "반전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서승욱.남궁욱 기자<sswook@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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