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태도변화…6차 접촉에 기대|48일만에 열린 남-북 국회예비접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판문점=허남진 기자】48일만에 재개된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은 성사여부에 대한 내외의 큰 관심 속에서 시작됐다.
이날 우리측은 그동안 회담의 교착원인이었던 회담형식에 대해『개·폐회식을 국회의원전원참석의 합동회의』로 하자고 수정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나서 주목을 끌었다.

<북서 "다시 만나자">
남-북 양측은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본 회담의 형식과 의제문제를 둘러싸고 상대방 안에 대해 서로『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며 공방만 벌이다 6차 접촉 날짜만 정해 놓고 2시간10분만에 회담을 종료.
특히 북한측은 우리측 안에 대해『합동회의가 대표회담 결과를 추 인만 할게 아니라 모든 정치인이 참여해 민족문제를 토론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함으로써 본 회담을 다중집회 화하겠다는 의도를 여지없이 노출.
우리측 박관용 대표(민주)가『우리측도 남북의원 전원이 서울과 평양을 왕래하기를 원하나 1천명이 토론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쌍방이 대표회담을 하자는 것』이라고 하자, 북측의 이동철 대표는『우리가 이렇게 5대5로 모였지만 무슨 효율성이 있느냐』고 억지 주장을 되풀이.
이에 우리측 김봉호 대표(평민)가『쌍방이 합동회의에서 상반된 의견이 나왔을 때 소위원회에 넘겨 만장일치로 합의 안을 도출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자 북측 전 단장은 『우리가 과반수 방식을 제시한 것은 민주주의의 보편원칙이기 때문』이라고 능청을 부리며『북측이 표결방식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합동회의에 흥미가 없다는 뜻 아니냐』고 말꼬리를 돌리기도.
이어 우리측 박 수석대표는『많이 모이는 게 좋다는 논리대로라면 북측에서 2천만 명을 대표해 5천명이 우리측이 4천만 명을 대표해 1만 명을 뽑아 회의하는 게 가장 합당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대표회담을 하자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우리국회에서도 어느 한 당의 힘으로 의견을 채택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남-북한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의원들이 모두 모여 아귀다툼이나 비판만 한다면 민족동질성이 오히려 깨지고 통일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
양측이 불가침 문제를 놓고 입씨름만 거듭되자 북측 전 단장은『다음 회담날짜를 잡아라』떠 사실상 토론의 종료를 선언. 이에 우리측이『11월10일 만나자』고 제의한데 대해 북측이 11월17일로 수정제의 함으로써 회담은 끝났다.
우리측 대표단은 회담이 끝난 후 우리측지역인 평화의 결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11월17일로 예정된 6차 준비접촉에 기대감을 표시.
회견 문을 낭독한 이한동 대표는『우리측은 돌파구를 마련키 위해 북측제안까지 포함한 타협안을 제시했다』고 말하고『북한은 회담벽두부터 회담이 진전되지 않는 이유가 우리측에 있다고 주장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견지해 아무런 의견접근이 없었다』고 회담결과를 정리.
이 대표는 그러나 『오늘 회담에서 북측이 그동안 주장하던 다수결 원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나올 것 같은 발언을 했다』고 말해 6차 접촉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
김봉호 대표는『4차 준비접촉 때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를 북측대표단에서 느낄 수 있었다』며『특히 우리측수정안이 제시된 뒤 북측이 자신들만의 토의를 위해 정세를 검토했던 점은 북측에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었다』고 피력.

<"획기적 제안" 자찬>
기조연설문을 낭독한 뒤 북측 전 단장은 남북간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획기적 제안을 했다는 자찬.
이에 우리측 박 수석대표는 북측이 합동회의 인원을 남 1백50대 북 2백18명으로 못박은 것과 관련, 『남-북 문제는 표결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닌데 회의운영 문제는 어떻게 되느냐』면서『그 인원수는 부동의 숫자인가』고 질문.
이에 북측 전 단장은『회의형식부터 다루고 만장일치냐, 다수결이냐 하는 절차문제는 나중에 결정하자』며『우리가 좋은 안을 내놓았으면 받아들일 일이지, 그런 질문은 왜 하느냐』고 다소 고압적 자세를 보였다.
우리측 박 수석대표가 북측이 의제를 불가침선언 발표문제로 한데 대해『김일성 주석이 양측 최고당국자끼리 만나 불가침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고 전 단장은『우리가 합동회의에서 불가침선언을 하면 위대한 수령께서 행정적 절차로 그것을 채택하겠다는 것』이라고 대답.
오전10시 정각에 마주 앉은 양측 대표들은 북한대표들의 승진·서울올림픽·날씨 등을 주제로 10여분간 환담.
북측 전 단장은『9·9절 행사에 1백만 명의 군중이 시위를 하고 외국손님도 많이 왔다』며 선전을 하자 우리측 김봉호 대표가『서울올림픽에 1백60여 개국의 선수단이 참석해 큰잔치를 치렀으나 북측에서 오지 않아 섭섭했다』고 유감을 표시.
서울올림픽이 화제가 되는 것을 꺼려했던 전 단장은 올림픽 이야기가 나오자 안색을 바꾸며『외국손님이 아무리 많이 와도 집안손님이 참석치 못했는데 얼마나 기뻤느냐』고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
회담장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우리측 박 수석대표가 손을 내저으며 『자아, 모두다 회담장에 모인 우리가 잘 못한 결과』라며 화제를 돌렸고 이어 우리측 김봉호 대표는『내년 평양에서 청소년 체육대회가 열린다는데 우리가 선수는 물론 의원단도 많이 갈 테니 초청만 해 달라』고 말 한데 대해 북측 전 단장은『오세요』라며 간단하게 응답.
이날 통일 각에는 우리측 내외 신기자 1백여 명과 북측기자 30여명이 회의시작 30여분 전부터 나와 40여일 만에 개최되는 회담결과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북측기자들은 『올림픽을 보았느냐』는 우리측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잘 봤다. 우리들을 부르지 않아 서운했다』면서 올림픽에 관심을 보였으며『남한에선 현재 국정감사를 한다는데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한 로동신문기자는『연설에서 노 대통령이 새로 제안한 내용이 뭐냐』고 물었는데 연설자체에 대해선『민족 내부의 문제를 남의 나라에 가서 얘기할 필요가 있느냐』고 비판.
북측기자들은 또 올림픽에 대해『남-북간 지역 감정을 더욱 심화시킨 것』이라는 등 부정적인 평가.

<삼청 사건 등 관심>
북측의 한 방송기자는 올림픽 개최에 대해『경기내용은 보도되지 않고 올림픽이 개최됐다는 사실만 보도됐다』면서『공동개최가 실현되지 못한 것은 지극히 유감이며 북한 주민들은 매우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고 평가절하.
이에 우리측 기자가『소련과 중국은 올림픽 내용 자체에는 상당히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자 북측기자는『남한이 소중 등과 접촉을 하려는 것은 남-북한 교차승인을 유도해 분단을 고정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난.
북측 보도진들은 이날『삼청교육대사건은 어떻게 처리되느냐』『5공 비리나 광주사태문제가 갈 해결될 것 같지 않다』『학생들의 동향은 어떠냐』는 등 우리 국내정치정세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