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본회의장 앞서 '일촉즉발' 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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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한나라당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문을 지키고있는 열린우리당의원들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아 대치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김원기 국회의장이 1일 열린우리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민생관련 4개 법안을 직권 상정키로 하자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날 밤부터 국회 본회의장 앞에 돗자리를 깔고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나라당은 또 이날 밤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기습 점거하는 등 강경대응으로 맞서면서 사학법 재개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2일 우리당은 한나라당의 본회의장 점거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은 우리당의 일방적 법안처리를 막기 위해 각각 20~30여명씩 의원들들 동원, 첨예한 대치를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재개정 약속이 없으면 5월 국회도 없다는 입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학법 양보권고'를 거부한 열린우리당은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2일 민주노동당 등의 협조를 통해 3.30 부동산대책 관련 입법 등 주요 민생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김원기 의장은 우리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부동산대책법안 등 4개 법안을 직권상정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는 김 의장에게 16개 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요청했고 김 의장은 이 가운데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안, 도시,주거환경정비법안, 임대주택법안 등 부동산 3법, 동북아역사재단법안 등 4개 법안을 직권상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정동영 의장과 김 원내대표는 이날저녁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각각 방문해 김원기 의장에게 주민소환제법안과 국제조세조정법안 등 2개 법안을 추가로 직권상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한나라당은 "강행처리시 모든 책임은 여당에 있다"고 비난하며 1일 밤 9시께 소속의원 20여명을 보내 의장공관을 기습점거함으로써 지방선거를 한 달도 남겨놓지 않은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1일 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총 직후 ‘여의도를 떠나지 말라’는 지침을 하달 받았다. 일부 의원들은 의원회관이나 본청에 있으면서 당 지도부 지시를 받기 위해 저녁도 샌드위치로 때우는 등 ‘5분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

박 대표는 이날 저녁 의원총회가 끝난 뒤 "대통령께서 여러가지 고민끝에 한 권고인데 이렇게 해서는 안되지 않겠느냐"며 "사학법재개정은 약속한 것인데 직권상정하면 정치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재오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민노당이 여당의 '낭중취물'(囊中取物.주머니속 물건)이냐"면서 "그렇게 하면 한나라당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며, 강력하게 응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나라당은 의장공관 점거에 이어 김 부의장의 사무실과 자택에도 소속 의원들을 보내 김 부의장이 본회의 사회를 보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 한나라당 물리력 쓰나?

한나라당은 우리당 측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데 ‘실력저지’라는 단어를 먼저 꺼내들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본회의장을 점거, 법안처리를 강행한다면 이에 맞서 물리력을 쓸 것이라는 방침을 세웠다.

김원기 의장은 의장공관 점거로 임시국회 마지막 날 본회의 사회를 보지 못할 것에 대비, 열린당 소속 김덕규 국회 부의장에게 사회권을 위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번에는 우리당 의원들의 호위 속에 본회의장에 들어서 의사봉을 잡았지만 이번에는 한나라당 측이 워낙 완강해 본회의장 진입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때문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1일 심야 원내대책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국회 본회의 상정 실력저지 방침을 확인했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우리당의 공조 요청에 대해 반대입장을 표명한 반면 민노당은 비정규직 법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고 주민소환법안과 국제조세조정법안을 의장 직권상정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2일 본회의 법안 처리에 협조할 수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런 방침을 세우면서 이번 사태의 키는 민노당에게 주어지는 모습이다. 민노당은 이날 오전 긴급회의를 열고 주민소환법을 직권상정하면 참여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할 계획이다.

여야대치로 인해 이날 오후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는 취소됐으며 상임위도 한나라당 의원의 불참으로 무산되거나 개회 직후 산회했다.

한나라당과 우리당의 오전 회의 또한 모두 취소됐으며 현재 본회의장 앞에는 여야 의원들이 각각 20여명씩 돗자리를 깔고 대치하면서 한쪽이 화장실을 가면 인원에 맞춰 일어나 쉬는 듯 한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정현 공보부대표는 이날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지금은 사태를 뭐라고 예측할 수 없다”며 “물리적 충돌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바는 없고 또 우리가 먼저 물리력을 쓴다고 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열린우리당이 물리력을 쓴다면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며 “일단 민노당의 결정을 지켜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의석분포(총 296석)로 볼 때 우리당 142석과 민노당 9석만 합쳐도 의결정족수(149석)를 충족할 수 있어 직권상정이 이뤄질 경우 법안처리는 가능할 전망이지만 주민소환제법 등의 추가 직권상정 여부와 이에 따른 민노당의 최종 당론 정리에 따라 민생법안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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