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접근금지 해제…새 흐름 보여|무너진 「성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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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방위는 12일까지 국방부·육군 및 공군본부·정보사·3군사 등에 대한 감사를 끝마쳤다. 보안사·안기부 등 「특별지역」을 남겨두곤 있지만 군 일반에 대해서는 일단 한차례 짚은 셈이다.
5공 비리가 연일 터져 나오는 다른 상위에 비해 국방위는 피 감사기관의 특성상 발굴 실적은 별로 없지만 삼청교육이 클로즈업 됐고 12·12 사태, 무기 및 각종장비 구매관련의혹 등이 제기됐다.
그 동안 고수돼왔던 「접근금지」의 성역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야당의원들은 정보사의 깊숙한 지하회의실에서 중앙경제 오부장 테러를 따졌고 3군사를 방문해서는 야전군지휘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다시는 12·12사태 같은 군의 정치개입이 없어야 한다』고 못박는 드문 실례를 남겼다.
『일단 발을 들여놓은 것만도 큰 의의』라고 국방부 감사장을 들어가면서 한 야당의원이 털어놓은 소감이 암시하는 것처럼 군에 대한 감사는 군을 치외법권의 「구름」위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일이었다.
의원들이 요청한 국정감사자료는 상당수가 아직 제출되지 않았다. 그래도 삼청교육 사건으로 50명이 사망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처음으로 공개됐고 장군인사에서 특정지역 출신이 상대적으로 푸대접받고 있으며 군에 자살사고가 많다는 사실들이 드러났다.
특히 군의 각종 구매사업과 관련된 의혹 설의 추궁은 그것의 사실 여부를 떠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공개대비공개의 논란(국방부·정보사 감사 때)은 군 당국으로부터 『앞으로는 현황보고도 비밀사항여부를 신중히 판단, 공개할 것은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얻어냈으며 의원질의의 공개라는 우회적 방법으로 적지 않은 사실폭로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무소불위로 남용됐던 군사기밀보호법의 엄격한 적용이 중지된 상태가 되어버렸고 법개정의 필요성만을 증폭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국방위감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삼청교육대 사건. 새벽 2시까지 계속된 국방부감사에서 야당의원들은 삼청교육을 「제2의 광주사태」로 표현하며 물고 늘어졌는데 주로 △계획입안 및 결재자 △무고한 대상자 검거에 관계했던 수사관과 심사위원회 △인명피해를 낸 사고부대지휘관들의 책임규명과 의법조치에 학살을 겨누었다.
의원들은 국방부가 삼청교육 실태보고서를 내놓으면서 『취지는 사회악 일소라는 개혁의지였고 다만 시행과정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던 것』이라고 옹호론을 펴자 『죄 없는 국민을 잡아다 죽여놓고 사과한마디 없다』고 호통쳤다.
야당 측은 『관련자는 모두 증인으로 소환, 조사해야한다』고 으름장을 놓고있는데 본격소환은 감사가 끝난 후 상임위 활동 때 이루어질 전망이어서 삼청교육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있는 상태다.
오부장 테러에 대한 공개질의에서 조윤형 의원(평민)은 『이 사건은 국민의 성숙된 민주의식을 간과해 일어난 것』이라고 훈계성 발언을 했고 신임 정보사령관은 『국회의원이 정보사를 방문한 것은 부대창설이후 처음』이라며 『지난번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국민에게 실망과 심려를 끼쳐 유감』이라고 사과했다.
우리마당피습사건의 정보사 관련 의혹은 『자체조사결과 무혐의』라는 정보사령관의 설명을 대체로 수긍했고 권노갑 의원(평민)도 『우리 당에 제보된 내용은 잘못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후퇴했다.
각종 제보를 바탕으로 한 폭로성 질의는 주로 군 장비도입·재산불하의혹에 집중됐는데 △전 전대통령 유럽순방시 벨기에산 레이더 고가 매입 설 △풍산금속의 부산 조병창 특혜인수 설(황명수 의원) △군인공제회 관련 비리 설(김현 의원) △대통령선거개입지시 군단장공문서의혹 (권노갑 의원) 등이 추궁 됐다.
또 공군본부에 대한 감사에서도 노스롭사 항공기 도입 관련 스캔들, 대통령 전용기 및 전용 헬기문제 등에 대한 추궁이 녹녹치 않았다.
16년만의 국방위 감사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나 아직도 개선의 여지는 적잖이 남아 있다.
「국가기밀이란 벽 앞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얼마나 충족되어야 하나」라는 논란이 남아있다. 야당의원들은 『비공개내용을 봐도 별게 없더라』며 공개범위를 넓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제출도 미흡하다.
보안사에 대한 자료요청은 거의가 「보안상 이유」로 받지 못한 상태다.
때문에 보안사·안기부에 대한 감사를 앞두고 야당의원들은 『각종 인권탄압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재야·대학가 등을 훑고있다』며 벼르고 있어 어느 정도 베일이 벗겨질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의원들의 감사준비에도 문제점이 적잖이 드러났다.
폭로라는 것이 대부분 『사실무근』이란 답변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들이었고 더 이상의 추궁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군 당국의 경직된 태도나 사고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 같지도 않았다.
한 국방부 고위참모는 『김일성의 귀에 들어간 정보를 어떻게 찾아오느냐』고 자료유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삼청교육대 처벌문제도 일사부재리라는 논리로 맞섰고 오부장 테러사건은 「군에 대한 충성과 애정」의 발로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은 뭔가 변화하는 흐름에 대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 시작이 감사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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