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의 기능과 역기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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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시장경제가 경쟁을 자원배분의 기본질서로 삼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경쟁의 원리는 비단 경제적인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사회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적용되고 있다. 기업 간의 경쟁관계에서 우위를 확보한 기업에는 이유의 상승이라는 「시장의 보상」이 주어지고 노동력 발휘의 경합관계에서 생산성을 발휘한 근로자에게는 실질임금의 상승이라는 반대급부가 주어진다.
이른바 평등주의를 지향했던 사회주의 체제에 비해 시장경제 제도가 갖고 있는 생산력 발전의 효율성은 바로 그와 같은 구성인자들의 경쟁을 통한 능력발휘를 극대화시킴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경쟁이 있는 곳에는 항상 승자와 패자가 있게 마련이며 전자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보상이, 후자에게는 윤리적 또는 물질적 제재가 가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경쟁의 원리가 사회·경제적 규범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경쟁의 조건과 과정이 얼마만큼 공정하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앞의 것은 정태적인 출발상황을, 뒤의 것은 동태적인 운동의 과정을 지칭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경쟁의 사회·경제적 출발 조건을 가능한 한 공정하게 마련하고 경쟁의 과정에서 모든 당사자들이「게임의 규칙」을 준수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러한 규범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실제적인 정책형성이 많은 경우 경제적 힘을 소유한 집단에 의한「로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독일 자유주의 경제학을 대변하는「오이겐」(W.Eucken)은 정치가 이익집단의 「장난감 공」으로 전락한 사실을 개탄한 바 있었다.
예컨대 시간이 가면서 고조되는 소득분배의 악화에 대한 불만에 정책마련이 난제로 제기되고 있다. 제반 분배지표로 보면 다른 국가들과 비교할 때 그 불공정의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은데 사회구성원이 체감하는 분배의 불공정성은 몹시 크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물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앞에서 지적한 규범의 부재가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세제의 사각지대에서 금융자산이나 실물자산 소득을 축재의 원천으로 삼는 소수계층이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삶을 구가하는 한편 힘겨운 근로소득으로 연명하는 다수에게 이른바 공정과세가 이루어진다면 어느 누가 그러한 게임의 원리에 승복할 것인가. 사회의 제반 영역에 걸쳐 그러한 제도의 파행성 내지는 소득을 둘러싼 불공정 경쟁이 확산되는 경우 묵시적 사회계약의 성격을 갖는 게임의 규칙은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 분명하다.
경쟁이란 개체의 능력발휘를 자극하는 기능적인 면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에서 낙오되는 계층에 대해 여러 가지의 부작용을 유발시키기 마련이다. 경쟁이란 본질적으로「차가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쟁의 농도가 심화되면서 사회생활의 접촉대상이 되는 타인은 실재적 혹은 잠재적 경쟁대상으로만 간주될 것이며 이러한 사고가 팽배할 때 휴머니즘을 토대로 한 사회적 친화력을 견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경쟁이 유발하는 그와 같은 사회적 역기능은 이미 여러 경제사상가들도 지적한 바 있었다. 독일의 경제학자「바그너」(A.Wagner) 는 경쟁이 유발하는「도덕잠식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바 있었다. 또한 「몰라니」(K.Polanyi) 에 의하면 경쟁은 국부의 증대에 기여하는 한편 「사회적 동질성」을 마모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한다는 것이었다.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할 때 제기되는 과제는 한편으로는 경쟁의 기능을 살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이 유발하는 비인도적인 측면을 고려한 「황금의 중도」를 설정하는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위시한 몇몇 서구국가들이 도입한 사회적 시장경제 제도는 바로 그와 같은 사실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었다. 효율성의 증대에 미치는 시장경제의 기능을 토대로 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하는 차가움이나 사회·경제적 역기능을 극소화하자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과거의 성장제일주의 정책을 수정, 안정과 형평 내지는 삶의 질을 조화시키겠다는 의도를 밝힌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표출되는 다양한 갈등은 갈등에 대한 사회적 제어능력을 벗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간의 공존 원리로서의 공정한 경쟁을 통한 진보와 휴머니즘을 기저로 하는 사회적 삶의 실존을 조화시킬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하는 토론의 장에 모든 사회구성원 내지는 이익집단의 참여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다양한 욕구·견해·주장 등은 아마도 새로운 질서창출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의 불가피한 진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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