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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운영자가 내 패 보며 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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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캐나다에 서버를 둔 R 온라인 카지노. 'ung000'이란 회원은 지난해 5월부터 올 3월까지 도박으로 모두 2억원을 땄다. 80%에 가까운 승률이었다. '도신(賭神)'이 된 데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도박 사이트의 운영자인 이 회원은 상대방 패를 훤히 들여다보는 '뷰어 프로그램'을 개발, 사기도박을 벌였다. 다른 공동 운영자들도 김씨와 같은 방법으로 각각 수천만~수억원을 챙겼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30일 불법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개장한 혐의(도박 개장 등)로 김모(49)씨 등 2명을 구속하고 1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이 사이트에 투자한 혐의(도박 개장 방조)로 최모(63)씨 등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 등은 최씨 등에게서 6억5000만원을 투자받은 뒤 2004년 11월 멕시코에 유령 법인을 설립하고 캐나다에 서버를 둔 R 온라인 카지노를 만들었다. 이들은 회원이 통장에 돈을 입금하면 사이버머니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포커와 맞고(2명이 치는 고스톱) 등을 알선해 왔다. 김씨 등은 처음엔 각 판의 승자에게 받는 5%의 개평과 5%의 사이버머니 환전 수수료만 챙겼다. 수익이 신통치 않았다. 돈 욕심이 생겼다. 상대 패를 보는 프로그램을 자체 개발한 뒤 회원들과 직접 사기도박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런 방법들로 김씨 일당이 벌어들인 돈은 모두 29억원에 달했다.

김씨는 경찰에서 "수수료.개평 수익은 푼돈이다. 대부분의 불법 온라인 카지노에선 사기도박이 진짜 수익모델"이라고 진술했다.

◆ 상대방 패 다 읽어=보통 인터넷 도박에서 딜러를 맡은 이용자 컴퓨터가 패를 섞은 뒤 그 정보를 중앙서버를 통해 다른 이용자 컴퓨터들로 보내 도박을 벌인다. 김씨 등의 뷰어 프로그램은 패 정보를 전송과정에서 가로채 자신의 컴퓨터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승패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판돈이 적은 판은 일부러 져 주고 돈이 많이 걸린 판만 따내는 방법을 이용했다.

◆ 1000억원이 온라인 카지노로=대부분의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는 당국의 추적이나 단속이 어려운 해외에 서버를 둔다. 경찰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지노가 200여 개에 이를 것으로 본다. 쓰레기(스팸)메일 등을 통해 국내에서 회원을 모집한다. 지난해 도박 자금으로 1000억원 이상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한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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