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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리카'의 계절이 돌아왔다…찜통 속 사람들의 여름나기

중앙일보

입력

대구 중구 동성로 한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스1]

대구 중구 동성로 한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다. [뉴스1]

12일 오전 9시 21분 대구도시철도 1호선 열차 안. 승객들이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에서 일제히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구·경북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는 긴급재난문자였다. 일부 승객들은 "드디어 시작됐구나" 하는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는 그 더위가 아프리카의 폭염을 방불케 한다 해서 '대프리카'라는 별명이 붙은 도시다. 올해도 '대프리카'의 계절이 돌아왔다. 기상청은 대구·경북 전역에 폭염특보를 발효했다. 이 중 대구와 경북 구미, 청도 등 경북 중·남부 지역은 폭염 특보 중에서도 폭염경보가 내려졌다. 폭염경보는 일 최고기온이 35도 이상인 상태가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려진다.

지난 11일 오후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분수대에서 한 어린이가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분수대에서 한 어린이가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시키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의 대표 번화가인 동성로엔 사람들이 연신 부채질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뙤약볕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건물 그늘에 숨어 걷다 보니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대로엔 인적이 드물었다.

동성로와 인접한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역사 안에 마련된 '폭염대피소'도 남는 의자가 없었다. 오전부터 급격히 솟은 기온 탓에 벌써부터 땀에 젖은 사람들이 선풍기를 얼굴에 대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이연희(31)씨는 "오후 1~2시는 돼야 더워질 줄 알았는데 오전 10시부터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한 햇빛과 푹푹 찌는 무더위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 계산동 현대백화점 대구점 앞에 달걀 프라이, 녹아버린 러버콘, 바닥에 녹아 붙은 슬리퍼 등 이색적인 조형물 등이 설치되자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폭염의 도시 대구와 아프리카를 결합한 ‘대프리카(Daefrica)’를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대구 출신 작가와 지역 디자인 업체가 만들었다. [뉴스1]

대구 중구 계산동 현대백화점 대구점 앞에 달걀 프라이, 녹아버린 러버콘, 바닥에 녹아 붙은 슬리퍼 등 이색적인 조형물 등이 설치되자 외국인 관광객과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폭염의 도시 대구와 아프리카를 결합한 ‘대프리카(Daefrica)’를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대구 출신 작가와 지역 디자인 업체가 만들었다. [뉴스1]

실제 대구는 오전 10시35분 현재 31.3도의 기온을 기록했다. 경북에선 비슷한 시각 울진군이 32.9도, 의성군 32.8도, 영덕군 32.6도, 경주시 32.2도, 영천시 31.7도, 상주시 31.3도 등을 기록했다. 한낮 기온이 가장 높을 때가 오후 2시 전후인 만큼 이날 기온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폭염이 무서운 기세로 대구를 뒤덮으면서 대구시도 '더위와의 전쟁'에 본격 돌입했다. 지난 5월 만들어진 '대구시 폭염 태스크포스(TF)'가 나서면서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비롯한 13곳에서 물을 안개처럼 분사하는 '쿨링 포그', 달구벌대로 등 차량 통행이 잦은 대로에 물을 뿌리는 '클린로드'는 올해도 가동을 시작했다. 신호를 기다리는 보행자들을 위한 그늘막도 곳곳에 설치됐다. 도로 표면에 특수 도료 바르기, 텐트 치기, 쿨루프 시공 등 폭염에 맞서 미리 준비한 더위 대비책도 속속 제 기능을 하고 있다.

대구 중구 공평동 2·28 기념중앙공원에 설치된 증발형 냉방장치인 쿨링포그 아래를 지나가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중구 공평동 2·28 기념중앙공원에 설치된 증발형 냉방장치인 쿨링포그 아래를 지나가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기상지청 관계자는 "12일 대구·경북 대부분 지역에서 35도 내외, 13~14일은 35도 이상으로 매우 덥겠고 폭염특보가 확대·강화될 전망이니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며 "당분간 밤엔 기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아 열대야가 나타나는 곳이 있겠다"고 말했다.

부산에서도 더위가 기승이다. 김칠분(73·부산시 사하구 다대동)씨는 어젯밤 올해 들어 처음 에어컨을 틀었다. 김씨는 "웬만해선 잘 틀지 않는데 어제는 너무 더워 그냥 못 자겠더라"며 "오후 11시 넘어서까지 해수욕장 음악 분수 주변과 공원에서 운동하거나 돗자리를 깔고 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산지역에 폭염특보가 계속된 지난해 7월 부산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에 있는 꿈의 낙조분수에서 시민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송봉근 기자

부산지역에 폭염특보가 계속된 지난해 7월 부산 사하구 다대포해수욕장에 있는 꿈의 낙조분수에서 시민들이 물놀이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11일 올해 들어 첫 열대야를 맞은 부산 시민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해운대 해수욕장, 광안리 민락수변공원 등도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으로 붐볐다. 부산지방기상청에 따르면 11일 오후 6시부터 12일 오전 9시까지 기온이 섭씨 25도 이상을 유지해 열대야가 나타났다.

12일 아침 최저기온(오전 3시~9시 기준)은 25.1도였다. 기상청은 이날 부산 동래구와 금정구 등 일부 지역 낮 최고기온이 35도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오전 11시 폭염주의보를 폭염경보로 바꿨다.

부산시 재난대응과는 경로당·은행 같은 지역 1000여 개 무더위 쉼터를 점검하고 노인 가정을 방문해 폭염 행동 요령을 전하고 있다. 구·군에서는 전광판, 자체 문자·방송 시스템을 활용해 폭염에 대비하고 주요 간선도로에 살수 작업을 했다.

지난 11일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인근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부산 서구 송도해수욕장 인근 분수대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시 관계자는 "당분간 무더위가 이어질 전망이니 한낮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기상 상황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지난 10일 오후 4시쯤 논에서 일하던 80대 남성이 온열 질환으로 쓰러져 치료받았다.

한편 대구와 부산 외에도 광주광역시, 울산시, 대전시, 세종시 등에도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대구·부산=김정석·최은경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폭염 특보 발효 상황

폭염 특보 발효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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