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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죽이고 망치로 의사 폭행···퇴원 쉬워진 조현병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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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40대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의 한 주택가. 영양=백경서 기자

40대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의 한 주택가. 영양=백경서 기자

고(故) 김선현(51) 경감을 죽음에 이르게 한 조현병 환자 A(42)씨는 지난 5월 31일 경북 청송군의 한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전혀 질병 관리를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6일 강원도 강릉의 한 정신병원 의사에게 망치를 휘두른 조현병 환자 B(49)씨도 보건 당국의 관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정부, 인권 강화 위해 퇴원 늘리면서 #“본인 동의해야 보건소 통보” 법 개정 #경찰 숨지게한 환자, 6년 병원 다녀 #5월 퇴원 뒤 사실상 관리 안 돼

정부가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입원 문호는 좁히고 퇴원은 넓히는 쪽으로 법을 개정했지만 퇴원 후 환자 관리가 안 돼 강력 범죄를 늘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 경감 사건이 발생한 경북 영양군 안수현 보건소장은 “(A씨가) 병원에서 퇴원한 사실을 몰랐다. 현행 정신보건법에는 퇴원을 우리한테 통보하게 돼 있지만 그게 안 돼 우리가 상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제 52조(퇴원등의 사실의 통보)는 본인의 동의를 받거나 의사능력이 미흡하면 보호자 동의를 받아 퇴원 사실을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보건소에 통보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본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통보할 수 없다. A씨가 입원했던 청송군 병원 관계자는 “보건소 통보에 환자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병원에 6년 다녔고 10번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어머니한테 장기 치료를 권해도 듣지 않고 한 두달 지나면 아들을 데려갔다”며 “환자가 약을 잘 먹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조현병은 약을 제 때 먹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명수 대한조현병학회 홍보이사는 “제때 치료받지 않아 ‘피해망상’이 심해지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기간이 길어지면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환자 관리가 중요한 이유는 약 복용 체크다. 또 정신건강 전문간호사나 사회복지사가 1대1로 붙어서 환자를 상담한다. 환자가 낮에 센터로 나가 다른 환자와 정신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런 관리를 받으면 상당수 환자는 폭력성을 보이지 않는다.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강릉의 환자 B씨는 최근 출소한 뒤 보호관찰을 받던 중이었다. 보호관찰은 대개 한 달에 한 두 차례 출소자를 불러 상태를 확인하는데, 의학적 관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기영 강릉시 보건소장은 “보호관찰 중이어서 통보받지 못해 사례 관리가 안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법을 개정한 뒤 정신질환자의 비(非)자의입원 비율이 2016년 12월 61.6%에서 올 4월 말 37.1%로, 전체 입원환자가 6만9162명에서 6만6523명으로 줄었다. 주변에 조현병 환자가 늘었다는 얘기다. 퇴원 문을 넓히는 대신 관리 인프라가 촘촘해야 하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영양군을 비롯한 기초자치단체 15곳에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없다. 한 정신의료기관 관계자는 “정신재활센터, 낮 병원, 데이케어센터, 홈스테이(가정집에서 환자 기거) 등이 연결돼야 하는데, 이런 게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대검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강력 범죄(절도·강도·살인 등)를 일으킨 정신질환자(조현병 포함)가 2012년 540명에서 지난해 847명으로 늘어났다. 퇴원 문을 넓힌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에스더·임명수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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