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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변하면 주변 집기 흉기로"…조현병 환자에 사망한 경찰관, 영결식은 눈물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0일 오전 경북 영양군민회관에서 열린 순직한 고(故) 김선현 경감의 영결식에 참석한 경찰관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경감은 지난 8일 경북 영양의 한 주택에서 난동을 부리던 주민을 제지하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뉴스1]

10일 오전 경북 영양군민회관에서 열린 순직한 고(故) 김선현 경감의 영결식에 참석한 경찰관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 경감은 지난 8일 경북 영양의 한 주택에서 난동을 부리던 주민을 제지하다 흉기에 찔려 숨졌다. [뉴스1]

"항상 솔선수범하고 적극적인 분이셨습니다. 사건 당시 위험에 빠진 동료를 보고 앞뒤 생각지 않고 달려갔을 겁니다."

조현병 40대, 평소엔 착하다가도 #갑자기 돌변해 난폭해져 #성인 남성 10명 와도 진정 어려워 #주민들 "사달 날 줄 알았다"

10일 오전 10시 경북 영양군 영양읍 영양군민회관. 고(故) 김선현(51) 경감의 영결식이 열렸다. 고 경감은 지난 8일 "아들이 난동을 부린다"는 어머니(67)의 신고를 받고 동료와 함께 출동했다가, 동료를 위협하는 조현병 환자 A(42)씨를 제압하던 도중 흉기에 목 부위를 찔렸다. 김 경감은 곧바로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주택가에서 난동을 부리던 주민을 말리다 흉기에 찔려 순직한 고 김선현 경감 영결식이 10일 오전 경북 영양군민회관에서 열렸다. 유가족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택가에서 난동을 부리던 주민을 말리다 흉기에 찔려 순직한 고 김선현 경감 영결식이 10일 오전 경북 영양군민회관에서 열렸다. 유가족이 헌화와 분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경찰, 주민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김 경감의 동료 권영욱 영양경찰서 경사는 고별사에서 "지난 4월 도로에 바위가 굴러떨어져 큰 사고가 났을 때 어둠 속에서도 주민의 생명을 구해내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따뜻한 미소와 사람을 좋아하던 그 모습, 그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김상운 경북지방경찰청장도 "당신은 아내에게는 따뜻한 남편이자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아빠, 80세를 넘은 부모님께는 늘 믿음직한 아들이었다"고 말한 뒤 한동안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동료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 경감의 아들(24)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고개를 들지 못한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인(49)과 딸(21)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울먹였다. 경찰은 김 경감에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40대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의 한 주택가. 영양=백경서 기자

40대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의 한 주택가. 영양=백경서 기자

영결식 후 이날 오후 찾은 영양읍 동부리. 사건 현장인 A씨 집 대문에는 폴리스라인이 처져 있었고 대문 틈 사이로 깨진 화분과 널브러진 집기들이 보였다. 지나가던 50대 주민이 "사건이 터진 날 화분 깨지는 소리가 나길래 집에서 봤다"며 "얼굴에서 피가 철철 나는 경찰이 빼앗은 흉기를 든 채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울부짖길래 사달이 났구나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주민들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고 입을 모은다. 30년 넘게 이 동네에 살고 있다는 80대 주민은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뒤에 정신병원에 있었는데 틈만 나면 나와서 난동을 부리곤 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40대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의 한 주택가. 영양=백경서 기자

40대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경찰관이 사망했다. 사건이 발생한 경북 영양군 영양읍 동부리의 한 주택가. 영양=백경서 기자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1년 1월 환경미화원과 실랑이를 하다 그를 중태에 빠뜨렸고, 환경미화원이 사망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평소에는 착하고 인사 잘하는 예의 바른 청년이지만 순간 돌변하면 난동을 심하게 부렸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돌변하면 주변 집기를 들고 어머니도, 키우던 개도 심하게 때렸다"며 "어머니가 왜 자꾸 정신병원에서 애를 데리고 나오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건 당시 다른 경찰이 와서 아들을 제압하자 어머니는 아들이 다쳤으니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하더라"며 상황을 전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A씨는 약 2주 전까지만 해도 정신병원에 있었다. 그동안 정신병원에서 건장한 남성 10명씩 나와도 돌변한 A씨를 잡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167㎝에 80㎏다. 한 주민은 "경찰 2명이서 간다고 했으면 내가 나서서 말렸을 것"이라고 말을 흐렸다.

경찰들은 또다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권력을 강화할 방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병환 영양경찰서 생활안전교통과장은 "사건 당시 김 경감이 권총, 테이저건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용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만약 반대로 경감님이 권총을 쏴서 피의자가 크게 다쳤다면 과잉진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공권력이 살아나야 제3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양=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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