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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선수로 뛴 4대강 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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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찬수
강찬수 기자 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러시아 월드컵도 4강이 가려지면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만일 축구경기에서 선수가 규칙을 맘대로 바꾸고, 심판이 한쪽 팀에 끼어 같이 공을 찬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4일 감사원이 발표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감사 보고서를 들여다보면서 이런 터무니없는 경기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법을 개정, 사업승인기관(개발부처)의 심의위원회에서 환경영향평가 항목·범위를 정하도록 했다. 동·식물상 현지 조사도 계절마다 할 필요가 없어졌다.

4대강 사업 착공 일정을 맞추기 위해 환경부는 아예 4대강 사업추진본부에 직원을 파견, 환경영향평가서 작성부터 검토·협의까지 직접 간여했다. 평가서 작성은 원래 개발업자가 하는 일이다. 환경청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의 환경영향평가서 검토 의견에서 부정적인 내용은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개발 사업을 감시·견제해야 할 환경부가 개발부처인 국토부와 한통속이 된 것이다. 각 지방국토청은 4대강별로 해당 환경청에 언제까지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완료하라고 마감 시간까지 정해 재촉했다. 선수가 심판에게 종료 휘슬을 불라 마라 한 것이다.

에코사이언스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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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대강 사업 때만 그랬을까. 지난 3월 환경부 ‘환경정책 제도개선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환경부가 비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국립공원위원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비밀 TF는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자료인 민간전문위원회 보고서 작성에 개입했다. 시험감독관이 수험생에게 답을 일러준 셈이다.

문재인 정부도 절대 자유롭지 않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인 흑산도에 공항을 지어야 한다며 정부 핵심과 국회 일부에서 환경부를 윽박지른다는 소문은 파다하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미세먼지와 폐비닐 사태에 대처가 미흡했다며 비판하던 환경단체가 김 장관을 지켜야 한다고 돌아선 것도 이 때문이다. 환경운동가 출신인 김 장관이 부당한 압력을 견뎌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개발 사업에 무조건 반대한 것도 곤란하지만, 절차를 무시하고 개발을 강행해서도 안 된다. 무리한 개발을 추진한다면 4대강 사업 감사처럼 다음 정권 때 그 사업이 감사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