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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자녀, 아빠 나타나도 엄마 성 그대로 쓰게 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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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정부 토론회에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게 하는 부성(父姓)우선원칙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저출산·고령화 포럼에서다. 이날 포럼은 ‘차별 없는 비혼 출산, 그 해법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열렸다. 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비혼 출산·양육에 대한 차별적 제도와 문화들을 살펴보고, 개선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별없는 비혼 출산’ 포럼서 주장 #“동거인도 수술동의서 서명 허용을”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제 발표에서 ‘비혼 출산·양육의 차별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송 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평균 비혼 출산 비율은 40%에 달하지만 국내는 2%에 불과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어 “혼인 여부에 관계 없이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는 사람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개선 방안 가운데 하나로 “부성우선원칙 폐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민법은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한다. 예외적인 경우만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혼인신고 할 때 엄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 부를 알 수 없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송 연구위원은 “혼인하기도 전에 ‘시월드(시댁 식구들을 이르는 말)’에 도전하는 그런 사람이나 가능한, 우리 사회에서 전형적인 ‘정상가족’의 이념을 살짝 벗어나는 경우만 어머니의 성을 택할 수 있다”며 “이러한 법적 프레임 아래서는 어머니의 성을 따른 자녀는 정상가족이 아닌 예외적인 가족이라는 차별적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혼모가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붙인 경우에도 나중에 아버지가 아이를 인지하면 아버지 성으로 바꾸게 된 민법 조항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베이비박스 등에 아동을 버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 어머니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출산하는 익명출산제, 신생아 출산 즉시 부모가 아닌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를 하게 하는 출생통보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순남 성공회대 젠더센터 연구교수는 정부의 기존 저출산 정책이 결혼한 정상가족 위주로 집행된 점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저출산 위기 구도에서 여성을 출산정책의 대상으로 봐왔다”라며 “여성의 결혼 지연이나 출생 개시 연령의 연기를 문제라고 보고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해 이성 간 결혼 중심의 일과 가정, 노동환경개선, 주거문제에 초점을 맞춰왔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같은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동거인에게도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주고,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권리를 주는 등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결혼을 하기 어렵고,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는 국내 현상을 놓고 결혼하지 말고 아이를 낳으라고 결혼 단계를 ‘점프’ 시켜주겠다는 얘기는 앞뒤가 맞지 않다”라며 “다양한 가족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동거 커플이나 동성 부부에 대한 논의가 저출산 정책으로 포장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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