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보며 '미스터 딩'이 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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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예년처럼 미국 전역에서 불꽃놀이 축제가 일제히 열렸다. 이날 하루에만 1만6000곳에서 대규모 불꽃놀이 행사가 진행돼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그러나 매년 불꽃놀이를 즐겨온 미국인 가운데 단 한 명의 중국인 사업가가 폭죽 물류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미국 내 1만6000곳에서 연례행사로 진행 #상하이 출신 '미스터 딩'이 70% 물량 맡아 #중국·미국 물량 독점하며 7억 달러 수입 #미·중 무역전쟁 격화하면 불꽃놀이도 옛일

4일(현지시간) 뉴욕 원월드 트레이드센터를 배경으로 불꽃놀이 행사가 한창이다. [A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뉴욕 원월드 트레이드센터를 배경으로 불꽃놀이 행사가 한창이다. [AP=연합뉴스]

지난 10년간 중국 상하이 화양과 미국 퍼스트랜스 인터내셔널, 두 회사를 통해 폭죽 물량을 한 손에 쥐고 흔든 인물이 바로 ‘미스터 딩’으로 불리는 딩얀종이다. 1969년생에 유럽으로 폭죽을 수출하던 상하이 출신 사업가였다는 사실 외에는 사진도, 학력도, 가족관계도 알려진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다.

워싱턴포스트(WP)가 글로벌 무역 관련 회사들을 추적하는 판지바를 통해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지난 4∼5월 불꽃놀이에 쓰이는 폭죽의 통관 실적을 분석한 결과 ‘미스터 딩’과 관련된 회사가 7400개 컨테이너를 통해 10만 t의 폭죽을 실어나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독립기념일에 필요로 하는 폭죽 전체 양의 70%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메릴랜드 주에서 폭죽을 공급하는 팀 제임슨은 “독립기념일 행사를 제대로 치르기 위해 용기 하나에 10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배송비로 1만8000달러를 부담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물량을 한 사람이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말했다.

미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불꽃놀이 현장. [AP=연합뉴스]

미 독립기념일인 4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린 불꽃놀이 현장. [AP=연합뉴스]

폭죽 생산 업체가 몰려있는 중국 남동부의 류양에서 미 중부까지 옮겨오는데 30일에서 45일 정도가 소요된다. 중국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까지의 물류를 맡는 화양의 물동량은 2008년 2만9000t의 폭죽을 실어나르다가 2009년에는 3만5000t으로 증가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수출 규모는 세배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불꽃놀이협회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매년 불꽃놀이에 10억 달러 이상을 지출한다.

결국 미국인들이 독립기념일에 엄청난 폭죽을 터뜨리며 기분 내고 있을 때 7억 달러 이상을 쓸어담은 인물은 중국인 ‘미스터 딩’이었던 것이다.

‘미스터 딩’이 폭죽 물량을 독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 내 항만기관과 유착돼 있기 때문이라고 WP는 분석했다. 2008년 2월 중국 남부 포산의 폭죽 보관창고에서 대규모 폭발사고가 일어난 뒤로 상하이 항구를 통과하는 수출 면허가 ‘미스터 딩’에게만 주어지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폭죽이 생산되는 류양에서 양쯔강을 따라 상하이 항만의 창고에 보관됐다가 미국으로 수출되는 컨테이너선에 탑재되는 유통경로인데, 미스터 딩이 상하이 해사안전청을 접수한 것이다.

그는 이후 폭죽 물류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폭 올렸다. 2008년 폭발사고 이전 컨테이너 운송비용은 5000달러 정도였는데, 미스터 딩은 이를 8000∼1만5000달러로 대폭 올렸다. 독립기념일에 몰리는 물량에 대해서는 2만 달러까지 높은 가격을 불렀다.

미국 불꽃놀이협회의 줄리 헤크먼 전무는 “상하이를 통과하는 모든 폭죽은 딩과 그의 회사 화양을 통해야 한다”면서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아무도 현재 보트를 흔들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스터 딩이 미국 사업을 확장하던 초기에 같은 상하이 출신의 미국 물류업자와 파트너 관계를 맺었으나, 이후 퍼스트랜스 인터내셔널을 미국에 세워 미국 내 물류까지 독자적으로 챙기기 시작했다.

미스터 딩은 경쟁자의 출현도 원치 않았다. 덴마크의 신생 선사가 중국 상하이 인근의 다른 항구를 통해 폭죽을 미국으로 운송하려 했지만, 상하이 항만청은 물론 위협을 받은 모든 폭죽 관련 업체들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4일(현지시간) 미 독립기념일을 맞아 미 전역 1만6000곳에서 불꽃놀이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캔자스시티의 불꽃놀이 모습.[A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 독립기념일을 맞아 미 전역 1만6000곳에서 불꽃놀이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은 캔자스시티의 불꽃놀이 모습.[AP=연합뉴스]

2010년 미국 연방 해양위원회가 미스터 딩의 부적절한 통제권에 대해 선적규칙을 위반한 것이 없는지 조사에 나선 적이 있다. 그러나 미스터 딩을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가 입을 맞추는 바람에 아무런 증거도 확보하지 못한 채 조사를 종결해야 했다.

WP가 미스터 딩과 인터뷰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를 비롯해 다방면으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심상치 않아 사태를 지켜봐야겠다”는 답변만 측근을 통해 전해 들었다.

당장 6일부터 본격적으로 불붙는 미ㆍ중 무역전쟁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경우 내년 독립기념일에 미국인들이 예년처럼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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