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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도정 채무제로는 사실상 투자제로 정책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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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경남위원회 이은진 공동위원장이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채무제로 정책에 대한 평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새로운 경남위원회 이은진 공동위원장이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채무제로 정책에 대한 평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위성욱 기자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추진한 ‘채무 제로’ 정책이 사실상 ‘투자 제로’ 정책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경수 도정의 인수위원회 성격인 새로운 경남위원회(이하 위원회)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판단을 내놨다. 채무 제로 하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방법이 문제라는 취지다.

인수위 성격 새로운 경남위원회 평가결과 #“취지는 긍정 평가하면서도 방법이 문제”

위원회에 따르면 홍준표 전 지사는 2016년 6월 1일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경남도에 빚이 없다는 채무 제로를 선언했다. 빚이 가장 많았을 때인 2013년 1월 1조3488억원을 3년 반 만에 모두 갚았다는 의미다. 당시 박충규 예산담당관은 “2013년 1월 경남도 재정상태는 파산의 전 단계인 ‘재정 고통 단계’였다”며 “방만한 운영이 원인으로 분석돼 행정(6464억원)과 재정(7024억원) 분야로 나눠 빚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6·13 지방선거 참패 결과에 대해 대표직 사퇴를 공식 발표한 뒤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있다. [중앙포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달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6·13 지방선거 참패 결과에 대해 대표직 사퇴를 공식 발표한 뒤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라있다. [중앙포토]

그러나 위원회는 채무 제로가 반드시 편성해야 할 예산을 제때 쓰지 않는 투자 제로 방식으로 추진됐다고 지적했다. 해마다 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시·군 조정교부금, 영유아 보육료 등 중앙지원사업의 도비 부담분을 그다음 해로 넘기거나 그해에 100% 다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예산이 4081억원에 이른다는 것이 위원회 설명이다.

위원회는 또 경남도가 운영하던 19개 기금 중 중소기업육성기금과 환경보전 기금, 재해구호기금 등 12개 기금을 채무상환에 활용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남도와 기초자치단체가 추진할 공공사업에 투입하기 위해 모은 지역개발기금 2660억원을 채무상환에 활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금 폐지로 기금을 활용해 추진하던 사업의 사업비를 일반회계에서 충당하면서 일반회계 부담도 커진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달 27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앞 정원에서 경남도청 직원이 중장비를 동원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 '경상남도 채무 제로'를 기념해 심었던 나무를 뽑고 있다. [중앙 포토]

지난달 27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앞 정원에서 경남도청 직원이 중장비를 동원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가 경남도지사 재직 시절 '경상남도 채무 제로'를 기념해 심었던 나무를 뽑고 있다. [중앙 포토]

채무 제로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재원이 부족한데도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그동안 재원이 부족해 매년 2000억~3000억원의 예산을 반영하지 못한 채 차기로 미뤄온 것이다. 2018년 현재 미반영 예산 규모는 5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위원회는 이런 경남도 재정 상황을 ‘비정상’이라고 표현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2일 경남도청 지사실에 백팩을 매고 출근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2일 경남도청 지사실에 백팩을 매고 출근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

홍준표 도정이 채무 제로를 선언했지만 실제로는 빚이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재정에서 빚은 ‘채무’와 ‘부채’로 나뉜다. 채무는 갚아야 할 날짜와 금액이 정해져 있는 빚이다. 지방채가 대표적이다. 반면 매년 금액이나 갚을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돈이 부채다. 퇴직금 등을 말한다. 이 기준으로 지난해 말 기준 경남도 부채는 5000여억원이나 된다. 채무 제로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부채가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토대로 김경수 도지사에게 시·군 조정교부금, 중앙지원사업의 도비 부담분 등을 올해부터 제대로 편성하는 ‘재정 운영 정상화’를 권고했다. 또 현재 편성 중인 추경에서 지역개발기금 1500억원을 차입해 부족 예산을 임시로 메우는 등 부족 재원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이은진 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전임 지사는 경남 경제가 바닥으로 하향하는 시점에 오히려 재정 긴축 정책을 폈다. 앞으로는 건전한 수준의 부채관리로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며 “경제 활성화와 민생 경제 살리기를 위한 예산을 적극적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앞 정원에서 '경상남도 채무 제로'를 기념해 심었던 나무를 뽑을 당시 나무 앞에 놓여 있던 표지석. [중앙포토]

지난 27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 앞 정원에서 '경상남도 채무 제로'를 기념해 심었던 나무를 뽑을 당시 나무 앞에 놓여 있던 표지석. [중앙포토]

한편 지난달 27일 경남도는 홍 지사가 채무 제로를 기념해 심은 나무를 철거했다. ‘채무 제로 기념식수’라고 적힌 표지석은 남겨뒀다. 하지만 하루 뒤 적폐청산과 민주사회 건설 경남 운동본부(이하 경남본부)는 “홍준표는 진주의료원을 없애는 등의 방식으로 장부상에 사기 채무 제로를 만들었다”며 표지석을 땅에 파묻었다. 이에 인수위 명희진 대변인이 “도청 공무원 제지에도 물리력을 동원해 공공기물인 표지석을 일방적으로 훼손한 것은 소통과 협치라는 김 지사의 소신과도 배치되는 행위”라는 논평을 냈다. 반면 경남본부는 명 대변인의 논평에 우려를 표하며 표지석 철거를 위한 공개토론을 요구하며 반발했다. 18일까지 김 지사의 입장도 표명해달라고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창원=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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