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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지지대 설치·나무 MRI까지… "보호수를 살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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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는 왕복 6차선 도로 위를 지나는 '느티나무골 육교'가 있다. 이 육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오는 네 갈래길 이름도 '느티나무 사거리'다. 인근 단오어린이공원에 있는 530년 이상 된 느티나무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높이 33.4m, 둘레 4.8m. 웅장한 기운을 풍기는 느티나무다.

지난달 수원 영통구 느티나무 장맛비에 부러져 #후계목 지정 등 나무 살리기 추진 중 #다른 보호수도 점검해 문제 시 관리하기로

지난달 26일 장맛비에 부러진 500년 이상된 경기 수원 영통구 느티나무의 현재 모습. 수원시는 이 나무를 복원하기 위해 대책단을 꾸렸다. 나무 앞에는 주민들이 쓴 푯말이 놓여있다. 최모란 기자

지난달 26일 장맛비에 부러진 500년 이상된 경기 수원 영통구 느티나무의 현재 모습. 수원시는 이 나무를 복원하기 위해 대책단을 꾸렸다. 나무 앞에는 주민들이 쓴 푯말이 놓여있다. 최모란 기자

하지만 지난 3일 직접 본 나무의 모습은 달랐다. 가지는 없고 기둥만 남았다. 기둥 윗부분은 껍질이 벗겨져 옅은 주홍색의 속살을 드러냈다. 주변에는 '출입금지' 알림판도 붙었다. 지난달 26일 내린 장맛비로 나무가 위에서 세 갈래로 찢기듯 부러진 탓이다. 주민 강모(75)씨는 "우리 동네 수호신같은 나무라 부러진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이 나무에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예사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 정조대왕 시절인 1790년 수원화성을 건설할 당시 이 느티나무의 가지를 잘라 서까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쟁 등 나라에 큰 위험이 생기기 전이면 나무가 울음소리를 냈다'는 설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위험을 알려주는 느티나무'라는 별명도 붙었다.

1982년 10월엔 보호수로 지정됐고 2017년 5월에는 대한민국 보호수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래서 주민들은 매년 나무 주변에서 영통 청명 단오제를 열어왔다.

장맛비로 부러지기 전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의 모습 [사진 수원시]

장맛비로 부러지기 전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의 모습 [사진 수원시]

지난 달 26일 장맛비로 부러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 [사진 수원시]

지난 달 26일 장맛비로 부러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 [사진 수원시]

그동안 보호수 주변을 공원용지로 지정하고 매년 영양제를 놓는 등 훼손을 막기 위해 노력해 왔던 수원시도 충격을 받았다.
부러진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살펴본 결과 나무가 노후화되고 썩어 내부에 생긴 동공(洞空)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람으로 따지면 골다공증 증상인 동공이 커지면서 나무는 속이 약해졌는데 당시 심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나무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보호수는 신성한 나무라 주민 등의 반발로 가지치기 등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라며 "동공으로 내부가 약해진 상황에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도 빼곡해 비바람에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원시는 나무 전문가를 초빙해 나무 살리기에 나섰다. 다행히 나무뿌리는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느티나무 옆에는 새싹(맹아)이 올라오고 있고 기존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씨에서 나온 묘목(실생묘)도 발견됐다.
수원시는 새싹이나 묘목을 키워 후계목을 육성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경기도 산림환경연구소도 부러진 나무를 배양해 복원하고자 느티나무 시료를 채취해 갔다. 부러진 나뭇가지도 3m 간격으로 잘라 자른 나무마다 숫자를 매겨 보관 중이다.

부러지기 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의 모습 [사진 수원시]

부러지기 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의 모습 [사진 수원시]

지난달 26일 장맛비로 부러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 [사진 수원시]

지난달 26일 장맛비로 부러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 [사진 수원시]

수원 시내 다른 보호수 23그루도 정밀 점검하기로 했다. 문제가 있으면 가지치기 같은 수술은 물론 영양제 투여, 방부(防腐) 처리, 지지대 설치 등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나무 속 공동 측정을 위해 '나무 MRI 기계'인 나무단층촬영기 '아보톰'(ARBOTOM)을 투입한다. 아보톰은 음파를 이용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나무 내부의 공동, 숨겨진 균열ㆍ부패 등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다.
이번 영통 느티나무 사고 이후 보호수의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경기도에는 1078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전부 100년 이상 된 20m 이상 높이에 둘레도 1m가 넘는다. 가장 오래된 보호수는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1333년 된 '음나무'다.
 수원시 관계자는 "영통 느티나무는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최종 복원방법이 결정할 것"이라면서 "다른 보호수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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