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상인' 후진타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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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26일 나이지리아에 도착, 올루세군 오바산조 나이지리아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있다. [아부자 AP=연합뉴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근엄하지만 능력 있는 상인(商人)'.

베이징(北京) 내 한 서방 외교 소식통이 27일 내린 평가다. 후 주석이 이번 미국.나이지리아 등 해외 순방에서 얻을 걸 다 얻었기 때문이라는 게 평가의 배경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26일 후 주석의 순방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 미국에선 컴퓨터 하드웨어 7억 달러 팔아=후 주석이 왜 이렇게 '후'한 평가를 받는 걸까. 우선 미국 방문에서 후 주석은 실리와 체면을 모두 챙겼다. 가장 큰 실리는 미국의 '이익 상관자(stakeholder)'가 된 점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다. 이는 "중.미 관계는 쌍방 관계의 범주를 이미 넘어섰다"는 후 주석의 선언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한마디로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협력 파트너로 인정받았다는 얘기다. 이에 비하면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 7억 달러 상당의 컴퓨터 하드웨어를 판 정도의 실리는 별것 아니다.

미국의 '의도적인 것으로 의심되는 결례'에 의연하게 대처한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국빈 방문을 거부하고 ▶중국을 대만(중국 측은 전 세계에 대만을 '차이니스 타이베이'로 부르기를 요구하고 있음)으로 호칭했으며 ▶연설 방해 소동을 막지 못하는 등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그래도 후 주석은 개의치 않았다. 시구와 고사를 들어 양국 간의 화합을 주문했을 뿐이다.

◆ 사우디아라비아와 송유관.석유단지 건설 합의=후 주석은 나머지 4개국에선 온통 '실리'에 집중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22일 송유관 건설에 사실상 합의했다.

송유관 건설은 '중동 석유의 안정적 육로 수송'에 고심해 온 중국으로서는 초미의 관심사다. 압둘라 빈 압둘 아지즈 사우디 국왕이 2월 1일 파키스탄에서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을 만나 파키스탄 영토를 통과하는 사우디-중국 송유관 건설 사업을 논의했고, 무샤라프 대통령은 같은 달 19일 중국을 방문해 중계 역할을 자임했다. 사우디와 52억 달러(약 5조원)를 공동 투자해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키로 합의한 것도 눈에 띄는 성과다.

◆ 나이지리아에 40억 달러 투자=나이지리아에선 다음달 19일로 예정된 4개 유전 개발 입찰에서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가 우선권을 인정받기로 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그 대신 중국은 지분 45%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나이지리아 국영정유회사의 설비 개선을 지원하고, 철도와 발전소를 건설하는 등 모두 40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것이다.

CNPC는 지난주에도 27억 달러를 출자해 2008년 이후 나이지리아 유전 지분의 45%를 인수하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자 세계 6대 석유 수출국인 나이지리아는 하루 평균 26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하고 있다. 2010년까지는 산유량을 400만 배럴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후 주석은 27일 마지막 방문지인 케냐로 이동해 현지 자원 공동 개발을 협의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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