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이번엔 마약중개상 … 영화 '사생결단' 류승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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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 영화, 제목이 너무 좋은 거 아닐까. 비정한 마약세계를 소재로 두 남자의 대결을 그린 '사생결단'(감독 최호)은 제목에 많은 걸 담았다. 연기나 연출이 다 '사생결단'을 낼 태세다.

모처럼 한 치의 물러섬 없는 연기 앙상블을 즐기는 쾌감이 있다. 숙적인 마약계 형사와 마약중개상으로 나온 황정민과 류승범(사진)이 그들이다. 가히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황정민이야 말할 것도 없고 류승범 역시 선배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류승범과 황정민은 무명시절이던 2001년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5년 만의 재회. '사생결단'은 두 사람 모두에게 그간 배우로서의 놀라운 성장세를 입증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류승범이 맡은 마약중개업자 이상도는 그간 그가 연기해온 '거친 아웃사이더' 캐릭터의 집결판 같은 인물이다.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년)에서 '주먹이 운다'(2005년)를 관통하는 '음지의 루저'다. 그 정도는 가장 심하다. 어차피 선은 없고 삶이 곧 자해인 곳에서 악에 받친 듯 살다 비극적 최후를 맞는 인물이다. 그에 맞춰 분노와 좌절을 내지르는 류승범표 발산 연기도 최고조에 올랐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홍보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영화의 어떤 점에 끌렸나.

"멀기만 한 마약의 세계가 멀지 않게 그려진 생동감 있는 시나리오가 좋았다. 슬프다, 세다, 웃기다 등 한두 마디로 말할 수 없는 모호함이 있는, 변칙이 있는 영화라는 점도 좋았다. 물론 황정민 형이 상대역이라는 것이 으뜸가는 이유였다."

-혹 황정민에게 밀리지 않을까 부담되지 않았나.

"천만에, 오히려 덕 좀 보겠다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때 느낀 건데 정민형은 단 한 컷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생각하고 연구하고, 상대에게 생각거리를 끊임없이 제시한다. 연기 파트너로는 최상이다. "(옆에 있던 관계자는 남달랐던 촬영현장 분위기를 전한다. "'사생결단' 촬영현장은 연기학 교재 같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배우가 어떻게 상황을 준비하고 호흡을 맞추고 견해차를 조율하는지 절로 느껴졌고, 그 과정이 흥미로운 드라마였다"는 얘기다.)

-인물 연기의 포인트는 뭐였나.

"적역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다음엔 부르주아 멜로를 제대로 해보자 한다(웃음). 워낙 루저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우리 영화의 모토는 상업 장르영화지만 '사실적으로, 뻔하지 않게'였다. 원래 시나리오엔 이상도가 힙합 청년으로 설정돼 있었는데 너무 뻔한 것 같아 명품차림을 제안했다. 인물이 보다 입체적으로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1000만원이 넘는 고급 수트에 기름 발라 머리를 뒤로 넘긴 이상도 스타일은 그렇게 창조됐다.)

-액션연기가 많아 육체적 어려움이 컸겠다.

"육체적 어려움이야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으니까 각오한 것이다. '주먹이 운다'때 최민식 선배께 배운 건데, 연기자가 부상을 입거나 육체적으로 힘든 게 자랑거리가 아니다. 배우들이 힘든 게 화면에 잘 보이기보다 재미있게 즐길 만한가가 중요하다. 이번엔 긴장감이라는 정서의 조율이 힘들었다. 캐릭터와 상황 자체가 끝장을 보는 영화라, 촬영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면 잠도 잘 오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부산 감천항의 최후 대결 장면을 찍은 뒤에는 나나 정민이 형 모두, 탈진을 지나 몇 시간 동안 멍해지는 공황상태를 겪었다. 그래도 뭔가 끝을 봤다는 후련함, 연기의 카타르시스, 무의 경지를 살짝 엿본 것 같다."

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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