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뮤지컬도 오페라도 아닌, 듣기 좋은 이 공연

중앙일보

입력

뮤지컬에 맞먹을 정도로 춤과 대사가 많은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사진 국립오페라단]

뮤지컬에 맞먹을 정도로 춤과 대사가 많은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사진 국립오페라단]

“입술은 침묵해도 바이올린은 속삭여요. ‘사랑해주세요’라고.”
혹시 이 가사가 익숙지 않더라도 선율을 들으면 어떤 노래인지 알 것이다. 헝가리 태생 작곡가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1905)의 3막에 나오는 노래다. 느린 3박자 왈츠고 음악회장에서 꽤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바리톤과 소프라노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면서 우아하게 부른다.

노래는 유명하지만 ‘유쾌한 미망인’의 전막이 국내에서 공연된 적은 거의 없다. 공연시간도 다른 오페라에 비해 짧으며 노래도 쉽고 듣기 좋은 데다 스토리도 간단한 ‘유쾌한 미망인’이 한국에서 거의 공연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28일 막 오르는 국립오페라단 '유쾌한 미망인'

국립오페라단의 윤호근 단장은 “독일어 대사가 많고 춤과 연기까지 뮤지컬이나 연극 수준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공연이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국립오페라단은 이달 28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유쾌한 미망인’을 무대에 올린다. 국립오페라단 1962년 창단 후 처음이다. ‘작은 오페라’라는 뜻의 오페레타인 ‘유쾌한 미망인’은 정말 볼 만할까. 개막 전인 26일 프레스 리허설에서 공개된 전막 공연으로 실마리를 찾아본다.

여주인공 한나(가운데)와 그에게 구혼하는 남성들. [사진 국립오페라단]

여주인공 한나(가운데)와 그에게 구혼하는 남성들. [사진 국립오페라단]

음악: 촌스러울 정도로 좋다 (★★★★☆)

‘유쾌한 미망인’의 노래는 대부분 춤곡이다. 왈츠를 비롯해 폴카, 마주르카, 폴로네즈, 갤롭 등이다. 빠르거나 느리고 우아하거나 경박한 온갖 춤곡들은 오스트리아 빈의 우아하고 유쾌한 사교계를 직설적으로 그린다. 20세기 초반의 작품이지만 단 하나의 불협화음도 없다. 모든 음악이 튀는 곳 없이 조화를 이루고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로 귀에 감기며 흘러간다. 이 때문에 오페레타의 음악이 다른 오페라에 비해 단순하고 쉽기만 하다는 비판도 받지만 촌스러울 정도로 좋은 것은 사실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이번 프로덕션을 위해 내한한 지휘자 토마스 뢰스너는 경기필하모닉과 함께 ‘빈 사람들의 피에 흐르는’ 왈츠 리듬을 표현해낸다. 빈 오페레타의 전문 가수인 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에체아 뿐 아니라 한국의 성악가들도 무리 없는 소리를 뽑아낸다.

국립오페라단 '유쾌한 미망인'의 3막 중 한 장면. [사진 국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유쾌한 미망인'의 3막 중 한 장면. [사진 국립오페라단]

스토리: 탄탄한 줄 알았는데 급마무리(★★★)

주인공인 한나 글라바리는 가공의 국가인 폰테베드로 출신이다. 사망한 남편에게 물려받은 재산은 폰테베드로 총재산의 절반이므로, 한나가 같은 국적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고국의 운명이 걸려있다. 한나의 옛사랑은 다닐로. 서로의 마음을 이리저리 가늠하기만 하는 사이에 주변 상황이 정신없이 바뀌는 것이 1막과 2막이다. 이처럼 흥미진진하게 쌓아올린 심리전의 스토리는 3막에서 갑작스럽게 끝난다. 오페레타의 결말은 스토리보다는 군중 장면, 합창, 춤 등 화려함에 에너지를 쏟는다.

이번 국립오페라단 작품의 연출을 맡은 기 요스텐은 인물 사이에서 얽히는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잡아냈다. 여주인공인 한나에게는 “사교계의 여왕처럼 행동하지 말아라. 시골 여자의 순박함이 남아있어야 다닐로를 향한 사랑이 설명된다”고 주문했다. 이 때문에 남녀의 사이는 아슬아슬하게 팽팽해지곤 했다. 하지만 요스텐의 정교한 연출력도 흐지부지 끝나는 원작의 한계까지는 뛰어넘지 못했다.

조크와 재치가 많은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사진 국립오페라단]

조크와 재치가 많은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사진 국립오페라단]

편의성: 오페라와 뮤지컬의 절묘한 중간 (★★★★)

‘유쾌한 미망인’의 특징은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독일어 대사다. 연극을 방불케하는 긴 대사가 극을 이끈다. 노래가 말에 앞서는 정통 오페라와 다른 점이고, 바로 이 점이 극의 속도감을 높인다. 또 한국 등지에서 ‘유쾌한 미망인’ 전막 공연이 드문 큰 이유도 바로 속사포 같은 독일어 대사다.

오페라 평론가 유형종은 국립오페라단 프로덕션에 대해 “한국 성악가들이 독일어 대사를 잘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문제없이 해냈다”며 “또 앞부분의 독일어 대사를 많이 줄여서 진행이 빨라졌고 지루함도 덜어냈다”고 평했다.

줄거리나 독일어를 몰라도 내용을 따라가며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오페라보다는 쉽고 뮤지컬에 없는 날 것의 목소리를 듣는 맛이 있다. 마이크 없이 부르는 성악가들의 튼튼한 성량 덕이다. 또 기교적인 노래는 오페라에서만큼 줄지어 들리고 춤은 뮤지컬만큼 많이 보인다. 길이도 적당하다. 러닝타임이 100분에 휴식시간 20분을 더해도 두 시간이다.

1905년 초연된 후 대중적 인기를 끌고 뮤지컬에도 영향을 미친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사진 국립오페라단]

1905년 초연된 후 대중적 인기를 끌고 뮤지컬에도 영향을 미친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 [사진 국립오페라단]

올바른 감수성: 민감한 시대에 과연? (★★)

100년 전 작품이지만 시대가 시대니만큼 손볼 부분도 있지 않았을까. ‘유쾌한 미망인’은 이런 대사로 시작한다. “외교관과 숙녀의 차이. 외교관이 ‘예스’라고 말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뜻이고 (중략) 숙녀분이 ‘노’라고 말하면 ‘그럴 수도’라는 뜻이죠. (중략) 안 돼요... 돼요...” 일종의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네구시의 대사다. 굳이 한국어 대사 “돼요 돼요”까지 만들어 마지막에 추가할 필요가 있었을까. 여자를 묘사하는 남성들의 보수적인 중창과 마초적인 제스처도 현대적 감수성의 청중이 불편하게 여길 수 있는 부분이다. 국립오페라단의 드라마투르그를 맡은 이용숙은 “현대 청중의 시각으로는 성차별적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 시대 빈의 사회적 분위기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연출가 요스텐은 “오페레타는 달콤하기만한 것도, 느긋하게 우리를 홀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안에는 쓰디쓴 맛과 천둥·번개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페라와 뮤지컬 사이의 틈새시장을 공략한 오페레타에 청중은 몇 개의 별을 줄까. 공연은 28ㆍ29일 오후 7시 30분, 30일과 다음 달 1일 오후 3시에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