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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소득주도성장, 경제참모 교체 넘어 궤도까지 수정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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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세 명을 전격적으로 교체했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홍장표 경제수석의 경질이다. 이 자리에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가 기용됐다. 이는 홍 수석이 주도해 온 소득주도 성장 실험에 대한 실패를 사실상 인정하고 그 책임을 물은 문책성 인사로 풀이된다.

일자리 참사 빚은 반시장 정책 접고 #노동개혁 통한 근본적 대책 요구돼 #윤종원 수석 정책조율 능력 발휘해야

홍 수석의 낙마는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난해 7월 경제수석에 발탁된 그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로시간제 도입을 주도하면서 기업 현장을 패닉으로 몰아갔다. 기업의 투자심리가 꺾이면서 실업률이 최악으로 치달았지만 소득주도 성장을 미화하는 데 치중해 급기야 지난달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까지 하게 만들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해 받은 통계 가운데 자영업자와 실업자를 쏙 빼놓고 임금 근로자들에 대한 통계만 인용한 것이었다. 이는 사실상 통계를 왜곡한 것으로 정부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곧바로 야당들이 청와대 경제라인의 문책을 요구하며 들고일어났고, 여당 내부에서도 고개를 흔들었다. 경제수석과 일자리수석이 경질된 결정적 배경으로 꼽힌다.

이제 청와대 경제 참모들의 경질을 넘어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재점검이 필요해졌다. 소득주도 성장의 목적은 소득격차를 줄이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시장 원리를 무시한 반시장적·획일적 방법 때문에 우리 경제에 심각한 상처를 입혔다. 신규 취업자 수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넉 달 연속 20만 명대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경기 호황 속에 일자리를 양산하는 동안 한국은 어설픈 정책으로 실업자만 양산한 셈이다.

우리가 소득주도 성장 실험의 부작용으로 비틀거리는 사이 경쟁국들은 규제 혁파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4차 산업혁명에 가속도를 냈다. 급기야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중국에도 뒤처지는 신세가 됐다. 여기에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한국의 수출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려면 주력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혁신성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축소 등으로 기업의 손발이 묶이면서 투자심리는 급격히 가라앉고 있다.

이제 경제 컨트롤타워부터 바로 세우고 과감한 궤도 수정이 요구된다. 이번에 장하성 정책실장이 유임된 것은 기존 정책 기조를 고수한다는 뜻으로 풀이돼 불확실성을 남겼다. 하지만 윤 수석 등 새로 임명된 참모들이 균형 잡힌 역할을 해내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문 대통령 역시 소득주도 성장에 집착할 게 아니라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감하게 혁신성장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노동개혁을 비롯한 현실적인 보완책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김동연 부총리에게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함도 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