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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이전 프로젝트]대선 때 "옮기겠다…" 끝난 뒤 "나 몰라라"

중앙일보

입력

 19대 대선 당시 주요 후보들은 하나같이 세종시에 행정수도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청사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던 과거와 달리, 후보들은 세종시로의 국회 분원 설치 혹은 이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 개정안에 수도 조항을 신설하며 공약 이행을 시도했다. 그러나 개헌안이 실질적으로 폐기되면서 ‘신행정수도’ 논의가 다시금 ‘공약(空約)’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고 있다. 대선을 휩쓴 행정수도 바람은 19대 대선 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정수도 공약’은 과거 대선 때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역대 대통령의 행정수도 공약

시작은 김대중, 밑그림은 박정희

1971년 김대중 대선 후보가 대전으로 행정수도를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이로써 촉발된 논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치며 구체화됐다. 박 전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위해 ‘수도 이전 백지 계획’을 세우고 산하에 실무기획단을 꾸리며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했다. 공주군 장기면(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이 최종적으로 선정됐으나 79년 박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계획은 전면 무산됐다.

계획의 80년대, 실행의 90년대

전두환 정부는 85년 1월 “대전을 행정중심 기능 도시로 육성한다”고 발표했다. 이전 대상은 중앙 부처로는 과학기술처 국가보훈처뿐이었고 조달청 전매청 철도청 등의 외청들이 거론됐으나 이행되지는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90년 2월 대전시청 업무보고에서 “정부는 가능한 한 많은 중앙 행정기관의 대전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으나, 이전 대상은 청 단위 중앙 행정기관 일부에 불과했다. 92년 11월 김영삼 민자당 대선 후보는 “11개 중앙행정기관 이전을 통해 대전을 제2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 계획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던 98년 조달청 철도청 등 10여개 외청이 이전함으로써 결실을 봤다. 역대 정권의 숱한 계획이나 대선 공약 중 유일하게 실행된 경우지만 ‘행정수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규모였다.

세종시 정부청사 전경.                                      [세종시 제공]

세종시 정부청사 전경. [세종시 제공]

세종시의 기틀을 닦은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서 수도권 집중과 낙후된 지역 경제 해소를 위해 ‘충청권으로의 청와대 및 중앙부처 이전’을 약속했다. 1년 뒤 국회에서  ‘신행정수도특별조치법’이 통과됐다. 하지만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 헌법을 헌법재판소가 인정하면서 신행정수도 건설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종시는 신행정수도라는 위상에 걸맞은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게 됐다.

오랜 기간 이어진 신행정수도는 가야 할 길이 멀다. 문 대통령의 개헌안이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았지만, 수도 조항 신설에 대해 여야가 비교적 합치된 의견을 내놓았다는 점은 다음을 기약해 볼 만하다. 관습 헌법에 가로막힌 청와대와 국회의 이전이 개헌으로 가능할지, 나아가 ‘행정수도 이전’의 역사가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기윤(경희대 정치외교학과2)·방준영(경희대 정치외교학과2) 국회이전프로젝트 서포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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