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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영화 '맨발의 기봉이' 김수미 이번에는 눈물 쏙~ 뽑는 노모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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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사진=김성룡 기자]

김수미(55.사진)는 자타가 공인하는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다. 최근 1년 사이에 출연한 영화만도 줄잡아 10편이 넘는다. 지난해 코미디 영화 '마파도'의 흥행 성공 이후 사방에서 그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도 두 편이나 된다. 최지우 주연의 멜로 드라마 '연리지'에선 단 한 장면이긴 하지만 김수미 특유의 유머를 만날 수 있으며, 애니메이션 '빨간 모자의 진실'에선 얼굴이 나오진 않지만 개성 만점의 톡톡 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6일에는 '맨발의 기봉이'가 개봉하고, 이후에도 '공필두''가문의 부활:가문의 영광3'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제가 정에 약해서 그래요. 정말 좋아하는 감독이나 후배가 부탁하면 거절을 못 하거든요. 꼭 주연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한 장면이라도 내가 필요한 작품이라면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요. 음식에 여러 가지 양념이 들어가듯이 영화에서도 그런 양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영화‘맨발의 기봉이’에서 기봉이(신현준)(左)와 엄마(김수미).

2003년 KBS 인간극장에서 방영된 '맨발의 기봉씨'를 원작으로 한 '맨발의 기봉이'는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최근 1년간 출연작에서 대개 관객을 웃기는 역할을 맡았다면 이번에는 정반대로 울리는 역할이다. 180도 연기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젊은 배우들도 쉽지 않은 연기변신에 도전한다는 것은 아직 배우로서 늙지 않았다는 증거다.

"배우는 기본적으로 상품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식상한 느낌을 가지면 안 되지요. 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도 같은 것만 계속 먹으면 물리지 않겠어요. 최근엔 계속 코미디를 했지만 이번에는 잠깐 쉼표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욕쟁이 할머니'로 상징되는 코미디에 주력했던 것도 사실은 연기변신이 목적이었다. 20년 넘게 출연한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웃음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수년 전 시어머니의 죽음 이후 찾아온 우울한 생활에서 헤어나와 새출발하기 위해서다.

"우울한 감정을 벗어나려고 일부러 코믹 작품 위주로 골랐어요. 저도 웃고 싶었거든요. 평소에 웃기는 사람은 아닌데 같이 일해본 사람들은 의외로 우스운 면이 많다고 해요. 호탕하게 웃고 재미있게 지내다 보니까 성격도 많이 바뀌었어요. 코미디 연기 덕분에 10대 팬들도 많이 생겼고요. 언니라고 부르며 팬레터나 선물을 보내는 애들도 있어요."

이번 영화에 출연한 데는 주인공 기봉이를 맡은 신현준과의 친분이 결정적이었다. 어느 날 방송사에서 녹화를 하는데 신현준이 연락도 없이 찾아와 두 시간이나 기다린 뒤 편지와 시나리오를 주고 가더란다. 읽어보니 이 영화에 왜 김수미가 있어야 하는지 등 절절한 부탁과 사연을 적은 것이었다. 촬영 중에도 신현준은 김수미를 줄곧 '엄마'라고 부르며 끔찍이 따랐다고 한다. 신현준은 일정이 겹쳐 일본 드라마 '윤무곡 론도'도 촬영했는데 일본에 다녀오는 때에는 꼭 '엄마'에게 주는 선물을 챙겼다.

"다른 일정이 겹쳤는데 현준이가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하게 됐죠. 흔히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제게는 현준이가 그래요. 유난히 많이 챙겨줬어요. 후배가 예의상 선배에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언젠가 반드시 만나야 할 좋은 인연을 만나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이인 것 같아요."

그는 혹시 기봉이 엄마가 일용엄니와 비슷하게 비치지 않을까 상당히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인터뷰 도중 몇 번이나 기자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영화 속 기봉이 엄마는 겉모습만 보면 허옇게 머리가 센 시골 노인이라는 점에서 영락없는 일용엄니다. 그러나 성격은 전혀 달랐다. 일용엄니가 가볍고 주책스러운 인물이었다면, 기봉이 엄마는 약간 퉁명스럽고 말수가 적으며 감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다.

"미묘한 감정표현이 힘들었어요. 차라리 팍팍 우는 연기 같으면 쉬운데…. 기봉이가 억울하게 얻어맞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은 순간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만 봐요. 실제 그분이 그렇다고 해요."

그가 연기자로서 목표로 하는 모습은 '한국의 이모상'이라고 했다. "식당 같은 데 가면 '이모, 이모'하고 부르잖아요. 이모는 엄마보다도 부담 없고 편한 사람이지요. 앞으로 한 번 '한국의 이모상'을 만들어 가고 싶어요."

글=주정완 기자 <jwj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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