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감부활…「야대국회」 실감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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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소야대의 13대 첫 정기국회가 10일 문을 열었다.
1백일로 회기가 늘어난 후의 첫 국회지만 여야간 올림픽정치휴전합의로 3주간 휴회 후 10월4일부터 실질회의가 시작된다.
이번 정기국회는 과거 어느 국회와도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걸로 예상되고 있다.
16년만에 국정감사가 부활되는 등 국회의 권한이 크게 강화된데다 다수 야당의 공조체제가 지금까지와 같이 계속돼 예산과 법률심사에 영향을 끼친다면 정부·민정당은 「껍데기」로 밀려나고 야당이 판을 쳐 여소야대의 진짜 현실을 실감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우기 5공·광주특위 등의 조사활동을 어느 정도 매듭지어야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데다 내년 3월로 잡고 있는 노태우 정부의 중간평가, 내년 5월 이전까지 실시해야 할 지방자치제 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일정상 그 준비기에 해당되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노정부로서는 중간평가에 이르기 전에 그들이 공약했던 제5공화국 비리의 척결작업을 국민에게 납득시킬 정도로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정부·민정당측은 결국 어떤 형식이 되든간에 노정부의 신임과 직간접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중간평가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손실 요인들은 모두 끊어내는 노력을 집중적으로 벌일 것이다.
때문에 민정당측은 제5공 비리조사특위·광주특위 등 최대의 현안들이 걸린 특위를 연내에 매듭짓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 목적이 달성될 가망성은 적다.
민정당은 따라서 제5공 비리문제 등에 보다 단호하고 주도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려고 애쓸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끈은 불행하게도 민정당 손에 있지 않다.
지방자치제는 잠복돼 있지만 가장 뜨겁게 내연하는 쟁점이다. 지자제의 실시범위와 방법에 따라서는 정치의 모습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측은 우선 서울시장과 직할시장,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의 직선을 포함한 전면실시를 주장하지만 최소한 지방자치단체장 직선만큼은 우선 관철할 작정이다.
민정당은 거의 결사적이다시피 이에 반대하고 있다. 가뜩이나 무너져 내리고 있는 당 조직으로는 지방자치제를 감당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민정당의 붕괴를 재촉할지도 모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직선은 대통령의 거부권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할 태세다.
따라서 만약 야당이 지방자치제의 전면실시를 강행한다면 여야간 피나는 정면대결이 불가피하다.
이와 함께 그 동안 조용히 논의했지만 여야 모두 민감한 관심을 보여 온 국가보안법·안전기획부법·사회안전법 집회시의법 등 이른바 정리성 법안들에 관한 본격심의와 개정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비록 몇 개 법안에서 여야간의 견해차가 심각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상당히 발전된 방향으로 개정하는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도 여겨진다.
그 무엇보다도 이번 정기국회의 다른 모습은 16년만에 부활된 국정감사와 야대국회에서의 정부예산 심의과정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여진다.
국정감사의 대상과 방법은 곧 상임위별로 정하게 되는데 여야간에 약간의 견해차를 드러내고 있다. 정부와 민정당 측은 과거와 같은 무소부위식의 현장중심 국정감사보다는 중앙부처를 국회에 불러 서류감사하는 방식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측은 현장중심의 감사를 통해 국회의 권위를 떨쳐 보일 생각이다.
과거처럼 지방 곳곳을 돌아다니는 관폐·민폐식 감사는 지양되겠지만 현장중심감사는 국회권한의 강화를 다시 한번 실감시키게 될 것 같다.
정부가 민정당과 당정협의를 거쳐 내놓는 예산안의 심의는 자칫 그 조정내용에 따라서는 정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 될 수도 있다.
예산은 기본적으로 정부정책의 재정적 표현이자 입법부의 행정부 통제수단이다. 때문에 야대국회에서 야당 측이 예산내용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가할 경우 정부와 여당의 정책의지는 엷어지고 오히려 야당의 정책이 반영되게 된다.
물론 예산심의는 국회의 권한이자 동시에 의무이기 때문에 예산을 통과시키지 않거나 심의를 거부할 수는 없다. 책임이 늘어난 야대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야당 측이 현재 정부·민정당의 19조3천7백억원규모의 예산을 팽창예산이라고 규정, 대폭 삭감을 주장하고 있어 만약 그대로 실현된다면 정부·민정당의 정책집행과 공약이행은 큰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금년에는 세제가 대폭적으로 개정되기 때문에 정부·여당으로서는 더욱 고민이 클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예산심의 때마다 날치기 통과되던 방식은 「여소」 상황에서는 꿈꿀 수도 없게됐고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야대가 자체수정안을 갖고 밀어붙일 수도 있어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마저 배제된 예산안이야말로 이번 국회의 최대쟁점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올림픽이후 여러 가지 불가측의 정치적 요소들이 뒤섞여있는 가운데 열리는 이번 정기국회는 앞으로의 정국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징후들도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민정당측은 예산이나 중요법령의 심의, 지자제 등의 정치적 일정을 앞에 두고 야당과의 「정책협력」의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며 그런 가운데서 장차 정국의 돌파구를 뚫을 수 있을 보수제휴의 기회를 찾아내려 할지도 모른다.
또 야당은 야대의 유리한 입장을 지키기 위해 3야 공조체제를 유지하겠지만 그들 나름의 활로모색을 위해 여야간 정책협력·예산·법령심사에서 조금씩 뉘앙스의 차이를 드러낼 것으로도 전망된다. <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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