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는 과연 AIDS(후천성면역결핍증)의 무방비 지대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의 AIDS확산문체가 일부사회단체에서 제기돼 관심을 끌고있다.
AIDS는「성의 극단적 타락에 대한 신의 징벌」이란 인식이 확산돼가고 있는 미국에서는 최근 이를 막기 위해 일부이긴 하지만 청교도적 금욕까지 강조하는 추세가 번지고 있다.
가정에 배포되는 AIDS계몽책자의 예방수칙에는 종전처럼「동성애를 하지 말자」「마약주사를 맞지 말자」…등등 외에 전문에 삽입된 안내문에는「섹스를 갖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부득이한 경우에는 한사람의 파트너와 갖자」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일부 대학 구내서점에서 성인 도색잡지를 추방, 이들이 자취를 감췄다. 데이트를 할 때도 상대방의 정직성·도덕적 정결성 등을 철저히 파악하라고 경고 하고있다.
지난봄에는 유명한 성의학자「매스터즈」와「존슨」박사가『AIDS는 일상 접촉에서도 감염되고 미국 내 바이러스 감염자(항체 양성반응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2배 이상이 많은 3백여 만명』이라고 발표, 큰 충격과 함께 논란이 됐다.「매스터즈」박사 등의 이 논은 보건당국자의 반박으로 아직 정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AIDS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는 어떤가. AIDS바이러스 감염자가 올 들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실정(현재 27명중 4명 사망)인데도 아직 확고한 대책이 없다. 우리 나라의 AIDS환자 중 많은 사람이 접객여성이다.
미국 등의 AIDS가 개인적인 문제인데 비해 우리 환자는 기생관광 등 사회문제의 하나로 발생한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지하에 잠복해 드러나지 않은 AIDS환자까지 합치면 실제환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AIDS의 확산은 유흥업소와 이에 종사하는 여성의 급증과도 관련된다. 서울 강남지역의 환락업소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주택가에까지 독버섯처럼 파고드는 이들 업소를 보면 서울시당국은 애당초부터 강남개발에 대한 청사진이 있었는지 의심이 간다.
서울시의 경우 술집·음식점·여관 등 1만7천여 업소 종사자 4만9천여 명을 AIDS 특별관리대상자로 지정, 관리하고는 있다. 그러나 전국의 식품접객업소 20여만 개소 중 대중음식점과 과자점등을 뺀 6만 개소 가까운 술집·카바레 등 유흥 성 업소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엄청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숫자가 정확하게 파악돼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가 외국인들과 접촉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서울 강남에만도 50∼1백 명의 호스티스를 고용하고 있는 유흥업소가 수두룩하다.
환락의 풍조가 이처럼 번지는 것은 각종 투기로 일확천금을 번 벼락부자가 많은 분위기 속에서 생성된 가치관의 타락, 쉽게 많은 돈을 벌려는 일부여성들의 안이한 생각에도 한 원인이 있다.
여성을 관광상품으로 내세워 외화벌이를 하던 종래의 비뚤어진 관광정책도 AIDS를 무방비 상태로 불러들일 수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일부 외국인들이 한국을 섹스의 천국쯤으로 알고 있다. 이는 70년대부터 80년대의 고도성장 동안 관광당국이 외화획득에만 급급해, 기생파티 등 외국인의 섹스관광을 공공연히 묵인해온 게 한 원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중진국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이때 섹스관광으로 손님을 끌려는 생각은 그만둘 때가 됐다.
여성의 퇴폐행위 등을 내세워 외화를 획득하던 태국도 최근에는 향락업소를 억제하고 단속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유흥접객업소에 종사하고 있는 여성이 1백만 명 가깝게 될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 반대로 치닫는 듯 하다.
AIDS가 일본에 상당히 번지고 있고 우리의 감염자 증가속도가 만만치 않아 이제는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정책당국의 확고한 장단기적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올림픽이후에는 외국인관광객이 더 늘어날 추세여서 더욱 그렇다.
당국은 장기적 안목으로 관광정책의 전환을 꾀해 무분별한 환락관광에 의한 AIDS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정부당국은 현재 매춘여성과 해외취업 노동자·외항선원 등 2차 감염자에 대한 항체반응검사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AIDS의 원천인 외국인 입국자에 대해서는 검사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그 많은 입국자에 대해 일일이 강제검사를 실시하는데서 오는 업무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년 1백만 명이 넘는 외국인 입국자 전부에게 검역증을 요구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당국자의 해명에는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주한미군에 대한 AIDS검진은 실시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보건당국은 이와 함께 AIDS에 대한 연구·치료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감염자 관리를 철저히 해서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AIDS재앙에 적극 대처할 필요가 있다.
올림픽과 관광객유치에만 들떠서 대비책에 소홀해서는 두고두고 후회를 남긴다.
AIDS는 물론 일상접촉에서 쉽게 전염되는 질환은 아니다. 그러나「AIDS왕국」미국에서도 당분간 이에 대한 백신이나 치료제가나오지 않을 것 같은 이때 AIDS는 철저히 경계해야 할 건강의 적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광섭<과학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