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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 동의보감이 특별한 건 목차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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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용환의 동의보감 건강스쿨(25)

책 쓰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면 목차구성부터 하라는 말을 듣는다. 목차만 제대로 구성되면 책 쓰기의 반은 성공한 것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목차 순서가 생각의 흐름이고 단위별로 구분 지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목차가 정해지면 내용을 차곡차곡 채워 넣기만 하면 된다.

만약 당신이 의서를 쓴다면 어떤 순서로 목차를 구성하겠는가? 의서가 전문분야다 보니 내용이 생소하겠지만, 의사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한번 가볍게 생각해 보자. 예를 들면 한의대나 의대의 커리큘럼대로 쓸 수 있겠다. 생리학, 병리학, 해부학 등 (한) 의학적인 기본지식과 화학, 생물학 같은 기초지식을 가져올 수도 있겠고 병명을 쭉 나열할 수도 있겠다.

목차 구성에 담긴 허준의 생각

동의보감 목차. [중앙포토]

동의보감 목차. [중앙포토]

허준도 동의보감이라는 종합 의서를 편찬하는 데 있어 목차를 구성할 때 꽤 골머리를 앓았던 것 같다. 동의보감 목차가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르고 창의적인 부분이 많아 목차 하나만으로도 동의보감의 비밀이 엄청나게 담겨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한의사들은 목차에 대해서만 해도 따로 많은 공부를 한다. 그만큼 이 구성은 많은 가치가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더, 오래] 지면을 통해 동의보감의 세계로 들어가면서 나열한 목차는 이렇다. 신형, 정, 기, 신, 혈, 몽, 성음, 언어, 진액, 담음, 오장육부, 간, 심, 비, 폐, 신, 담, 위, 소장, 대장, 방광, 삼초, 포, 충, 소변, 대변. 아마도 동의보감을 알고 있는 예리한 독자라면 한 챕터마다 그 순서대로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리라. 목차 하나마다 세부적인 내용을 살피면서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팁을 알려드렸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내경편’이라는 큰 목차 안에 위의 순서인 신형부터 마지막 대변까지를 세부목차로 넣었다. 동의보감 전체의 큰 목차는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지금까지 내경편을 살펴봤다. 왜 허준은 내경편을 앞부분에 뒀으며, 내경이라는 제목은 어떤 이유에서 붙였을까? 동의보감의 세계를 누비고 있으니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목차구성에 대해 허준의 생각을 따라 가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기존 대부분의 의서는 질병 위주로 나열했다. 요즘 같으면 체했을 때, 피부염일 때, 간에 이상이 생겼을 때, 당뇨, 갑상선 이런 식이다. 앞머리에 짤막하게 개요와 내용을 펼치고, 증상과 치료법이 이어진다. 옛날뿐만 아니라 현대의 서양의학 의서들도 이런 식의 구성이 많은 것을 보면 이런 목차 방식이 의서를 편찬할 때 편한가 보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먼저  

동의보감을 집필하고 있는 허준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 허준은 가양동 바위굴 '허가바위'에서 동의보감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허준박물관]

동의보감을 집필하고 있는 허준의 모습을 재현한 모형. 허준은 가양동 바위굴 '허가바위'에서 동의보감을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허준박물관]

의사 하면 질병을 떠올리듯 의서 하면 질병에 따라 원인과 증상, 치료법을 나열하는 것이 편할 수 있다. 하지만 허준의 생각은 달랐다. 어떤 질병에 이런 증상이 있으니 이 약을 먹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방식은 한의학적인 치료에도 맞지 않아 지양하지만, 무엇보다 허준의 생각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게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 질병, 증상에 대한 약은 나중에 알려줘도 된다 판단했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란을 겪고,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도 치료하면서 허준은 백성들의 삶을 깊이 관찰했다. 환자에게는 질병이 오는 것의 근원을 알려줘 미리 대비토록 하며, 의사에게는 그 덕목을 환자에게 알려주라 한다. 또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해 질병 이전에 사람이라는 근본을 보도록 가르친다. 의사가 보는 의서일 뿐만 아니라 환자가 펼쳐보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한 책이다.

내경편에서 내(內)는 안쪽이라는 뜻이지만 단순히 몸 안에 있다는 안쪽이 아니다. 안에 있는 장부뿐만 아니라 중요한 기초개념이나 구체화하기 어려운 언어, 꿈 같은 내용이 내경편에 포함된다. 그다음 글자는 경(景)이다. 경은 경치, 경관 같은 단어에 쓰는 문자다. 두루 살핀다는 뜻이다. 숲속에 있으면 산을 못 보지만 산꼭대기에서는 숲 전체를 볼 수 있듯 내경은 몸의 핵심부터 안쪽에서 두루 살펴 사람 몸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외형편에 외(外)는 바깥이지만 목차구성을 보면 뼈나 살도 포함돼 있다. 바깥이 단순히 겉에서 바라보는 바깥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는 안이긴 하지만, 핵심이라는 개념과 함께 만져지지 않는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외형편은 형태를 띠어서 겉으로 드러나거나 혹은 만져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이목구비, 가슴, 배, 피부, 뼈 등을 다룬다.

전통적인 의학관에서 인체의 핵심은 다섯 장부, 즉 오장이다. 이 오장 이전에 인체를 구성하는 근본 단위가 정, 기, 신, 혈 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양대 축으로 삼았다. 정, 기, 신도 그렇지만 꿈, 말소리, 충 같은 것은 만져지지 않는 것이다.

사람이 어디서 왔고, 인체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깊은 고찰이 있고 나면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방식이 세워진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생활습관이다. 이 시간에는 저 행동을 하고, 어떤 때에 무엇을 먹으며, 자는 자세는 이래야 한다는 사랑의 잔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총 25권 25책으로 구성된 '동의보감'의 모습. [사진 대한한의사협회]

총 25권 25책으로 구성된 '동의보감'의 모습. [사진 대한한의사협회]

허준이 이런 생각으로 의서를 편찬한 데는 선조의 어명으로 알려진 하교 말씀에서 짐작할 수 있다. 허준 본인의 공을 선조가 하명한 것처럼 빗대어 서두에 적은 것이라 알려지기도 한 동의보감 서문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서문은 이정구가 지었다)

선종 대왕은 몸을 다스리는 법도를 대중을 구제하는 어진 마음으로 더 크게 생각하여 의학에 마음을 두시고 백성의 병을 걱정하셨습니다. 병신년(1596)에 태의 허준을 불러 하교하시기를 “근래에 중국의 의서를 보니 모두 조잡한 것을 베끼고 모은 것이어서 볼만한 것이 없으니 여러 의서를 모아 책을 편찬해야겠다. 사람의 질병은 모두 섭생을 잘 조절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것이니 수양이 최선이고 약물은 그다음이다. 여러 의서는 번잡하니 요점을 가리는 데 힘쓰라. 외지고 살기 힘든 마을에 치료할 의사와 약이 없어 요절하는 자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약재가 많이 나오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니 종류별로 나누고 민간에서 부르는 명칭을 함께 표기하여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허준은 섭생, 생활습관이 우선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인체 구성원리인 내경편을 가장 앞에 두면서 생활습관에 대한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대표적인 것이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도가의 호흡법이나 운동법들을 수록해 놓은 것이다. 약초의 전문적인 명칭과 민간에서 부르는 이름을 함께 표기해서 평소에 먹어서 예방할 수 있게 신경 쓴 점이다. (이런 약초 이름 병기 작업은 조선 초기부터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래서 서문 말미에 이렇게 마무리한다.

…내경과 외형으로부터 시작하여 잡병의 여러 방면으로 나누고, 맥결(脈訣)·증론(症論)·약성(藥性)·치법(治法)·섭양요의(攝養要義)·침석(鍼石)의 여러 방법에 이르기까지 갖추지 않은 바가 없으며, 정연하여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환자의 증상과 예후가 천백 가지로 다양하더라도 더하고 빼고 늦추고 빨리하는 치료법을 폭넓게 응용하여서 빠짐없이 적용할 수 있습니다. 멀리 옛 서적을 살피거나 가까이 여러 조문을 찾을 필요 없이 분류에 따라 처방을 찾으면 여러 번 중복되어 발견되니 어떤 증에 대해 약을 쓰더라도 모두 알맞게 맞습니다. 이 책은 참으로 의가(醫家)의 보감(寶鑑)이요, 세상을 구제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의서인 동시에 삶의 지침서 

의서가 질병에 대해 알려줄 뿐 아니라 삶의 지침서 역할을 하는 책을 쓰겠다는 것이 허준의 결연한 의지다. 그래서 이전의 의서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게 내경편을 앞에다 배치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될 정도의 가치가 있고, 동북아시아 전체에서 가장 많이 중간되어 내려온 동의보감.

그래서 1995년 장쩌민 주석이 내한 때 ‘한·중 문화교류의 아름다운 역사를 빛낸 작품’이라고 까지 극찬한 것은 의서 안에서 질병 자체보다는 환자, 즉 사람의 본연에 집중하고 이어 사회까지 생각하는 정신의 가치를 인정한 때문이다.

박용환 하랑한의원 원장 hambakus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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