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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층에 갇힌 보수 … 진보 못지않게 젊은층 고민 얘기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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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호 02면

[SPECIAL REPORT] 6·13 지방선거 민심 읽기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직에서 사퇴한 유승민 의원이 보수 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직에서 사퇴한 유승민 의원이 보수 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6·13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보수 후보들에게 레드 카드를 내밀었다. 퇴장 명령이다. 보수의 ‘궤멸’이란 표현까지 나온다. 2016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대선 패배에 이어 보수 정치는 침몰했다. 선거 하루 뒤인 14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15일엔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가 연이어 사퇴했다. 국회의원 114석의 2당과 30석의 3당 모두 리더십 부재 상태다.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 시스템도 위태롭게 됐다. 대한민국 보수가 왜 이리 됐는가, 보수 재건의 희망은 있는가, 있다면 어떤 길인가. 보수와 진보의 시각으로 각각 선거 현장을 누빈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와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경남지사 선거대책본부장)을 박승희 중앙SUNDAY 편집국장이 14일 인터뷰했다.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내놓은 유승민 #천막당사 때보다 처절하게 망가져 #한국+바른미래 득표, 민주 못 당해 #보수, 뿌리까지 바꾸는 계기 삼아야 #안보·경제 분야 경쟁력 다시 찾고 #보수의 방식으로 진보 가치 수용 #통합보단 새 방향·인물 찾는 게 먼저 #가닥 잡히면 큰 풀 형성은 문제 아냐

길게 보면 2015년 4월 국회 연설부터, 짧게 보면 2016년 말 바른정당의 창당에 이은 바른미래당으로의 합당까지 유승민 전 대표는 개혁보수를 외쳤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크게 밀렸을 뿐만 아니라 이번 지방선거의 성적표도 초라했다. 국회의원·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 출마자 120명 중 당선자가 0명이었다.

14일 오후 중앙SUNDAY가 그를 만났다. 대표직을 사퇴한 직후였다. “인터뷰를 취소하고 싶었는데 오래전 약속이라 왔다”던 그는 전날 참패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너무 막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시간여 동안 “보수 재건 경쟁 과정이 진짜 머리 터지게 치열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밝혔다.

이렇게까지 보수가 몰락한다고 예상했나.
“‘보수가 크게 질 거다’ 이 정도 생각이야 다들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굉장히 충격적이다. 자유한국당이 이렇게까지 무너진 것도 의외다.”
오늘(14일) 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보니 결국 보수가 심판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일촉즉발 상황을 잘 넘기고 있다고 (유권자들이) 정서적으로 평가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사이 보수는 한 게 없다. 우리도, 한국당도 계속 실패했다.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더는 추락할 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젠 보수 전체가 근본적으로 정신 차리는 계기가 꼭 돼야 한다고 나는 본다.”
포괄적으로 보면 보수는 시장 보수와 안보 보수 두 가지다. 두 개의 가치로 해방 이후 반세기 이상 끌어 왔는데 그게 수명을 다했다고 보지 않나.
“사실 보수는 부패하고 도덕성이 결여되고 정의로운 게 좀 떨어져도 안보와 경제를 튼튼히 한다는 막연한 자존심이 있었다. 일반 국민의 보수에 대한 이미지와도 연결돼 왔다. 그런데 그게 무너졌다. 굉장히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정의·법치·공정·평등 이런 가치에 대한 국민의 갈구가 높아지고 양극화·불평등도 심화했다. 보수가 이런 데 관심 없으니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 이러면 다 노무현·문재인이 생각나게 됐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기존 보수보다 전향적으로 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유승민이 말하는 게 옳은데 왜 표를 많이 받지 못할까’란 의견도 많다.
“탄핵과 바른정당 창당 때문이라고 본다. 바른정당 창당 과정을 분열로 보고 그 책임을 나한테 묻는 게 일부 유권자 사이에 분명 있다. 저분들의 마음이 풀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구나 느낀다.”
정반대의 길을 간 게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다. 기존 세력과 갔는데도 심판을 받았다. ‘정통 보수는 비전이 없고 개혁보수는 외면받았다’는 말도 나온다. 보수의 암담함이다. 새로운 보수의 길을 찾으려면 어디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나.
“소득주도 성장이든 북핵 문제든 (현 정부의 접근법이) 허구 내지 잘못된 방법이라고 본다. (핵 문제의 경우) 트럼프 대선 전인 1, 2년 안에 결론이 날 것이고 소득주도 성장도 (예산으로) 겨우 막는 데 오래 못 간다. 보수의 기본인 안보와 경제에서 경쟁력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또 진보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지는 데로도 보수가 진입해 책임감 있게 보수의 방식으로 하면 (진보 독점도) 부술 수 있다고 본다.”
보수가 담론에 갇혀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한 게 아닌가. 예를 들어 시장가치를 내세우느라 대한항공 사태 등 이슈에 소극적이 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담론에 갇혔다기보다 한국당의 경우 그런데 문제의식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린 행동으로 보여 주긴 했는데 약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정당인) 우리가 하는 일은 입법과 예산이다. 보수 야당들이 문재인 정부 1년 동안 하나라도 입법과 예산에서 제대로 막은 게 없었던 게 오히려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최저임금제나 근로시간 단축, 산업안전이 다 어려운 사람들이 겪는 문제다. 야당이 앞장서서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보수가 재기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보나. 2020년 총선 전 가능할까.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총선 전에 보수가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야 총선에서 승부가 가능하다. 그 출발은 결국 사람이라고 본다. 18·19·20대 세 번의 총선에서 보수 공천이 제대로 안 됐다. 지금 바른미래당·한국당 사람들을 쭉 봐라. ‘이 인적 구성을 갖고 새로운 보수를 할 수 있겠느냐’란 건 굉장히 현실적 질문이다. 할 수 없다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문을 열어 놓고 우리가 도와주거나 최소한 같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모든 지역에서 2(한국당), 3번(바른미래당)을 다 합쳐도 1번(민주당)에 안 되는 숫자인데 합치면 된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수 리더십이 진공상태가 됐다. 새로운 리더십은 어떠해야 하고 당신의 역할은 뭔가.
“보수 재건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대화해야겠지만 사실 나 자신이나 상대방이나 기성 정치인은 마음을 많이 내려놔야 할 거다. 작은 씨앗을 만든다고 할까, 이런 노력을 하고 싶다. 은퇴한 올드보이가 아닌, 새롭게 보수를 같이할 젊은 사람이 필요하다. 보수가 잘 되길 바라는 사람이 5100만 인구 중에 왜 없겠느냐. 보수에 새 인물이 안 보인다는데 한때 민주당도 하던 얘기였다. 2007년 정동영 후보 때다. 우리도 너무 놔버릴(포기할) 건 아니라고 본다. 대신 보수 재건 경쟁 과정이 진짜 머리 터지게 치열했으면 좋겠다.”
2004년 천막당사 때와 비교하면 어떤가.
“지금이 더 처절하게 망가지고 절망적이다. 그때 그냥 박근혜 한 사람을 발굴해 내놓고 살았다. 그냥 ‘깨끗이 살겠다’ 회초리 맞고 울고 다닌 거다. 보수 알맹이가 변해야 한다, 이런 고민까지는 사실 안 갔다.”
기존 보수 정당들이 부정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제3의 텐트를 만들어 다시 헤쳐모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유승민·홍준표·안철수가 새집을 짓자는 수준도 있을 수 있다. 반기문이든 황교안이든 누구든 모아서 말이다.
“그게 되려면 아까 말한 씨앗, 구심점이 좀 있어 줘야 한다. 또 모아 놨는데 뭐가 다르냐는 평가를 받을 수 없으니 새로운 콘텐트가 필요하다. 지금은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뭘 가지고 재건 할 거냐부터 경쟁이 시작될 것이고, 이런 경쟁이 굉장히 스피디하게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가닥이 잡히고 협력이 이뤄지면 그 안에서 큰 풀을 만들어 가는 건 방법의 문제일 뿐이다.”
진보 진영은 시민단체 등 외곽단체들이 존재해 수혈됐고 생존할 수 있었다. 보수엔 그런 세력이 없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시민단체가 없는 것이다. (진보에선 단체를 통해) 평소 끈끈하게 교류하던 사람들이니 찾기가 쉬울 것이다. (보수는) 태평양에서 바늘 하나 찾듯 해야 한다. 매우 어렵다.”
영국 노동당 재건 과정에서 토니 블레어가 제일 먼저 한 게 당헌에서 국유화란 가장 중요한 가치를 포기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안보보수를 버리는 건 어떤가.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기엔 본질을 외면하고 나라 운명을 가지고 심한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다만 모든 이슈를 과거 방식으로 설명하지 말자는 거다. 국민도 안보 걱정한다.”
유승민 정치는 북과도 대화할 수 있다는 건가.
“당연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인 구미에서 민주당이 당선됐다. 50대 이상이 30%일 정도로 젊은 층이 많아서라고 한다. 보수 정치인들이 10~20대의 정치소비층 유입이란 표밭의 변화에 둔감했던 게 아닌가.
“보수가 고령층에 갇힌 거다. 고령층에서 통하는 언어만 한 거다. 보수가 20·30세대가 가진 고민을 진보 못지않게 열심히 얘기하고, 젊은이가 분노하고 실망·좌절하는 걸 보수 방식으로 말하기 시작하면 상당수가 돌아올 것이라고 본다.”

정리=고정애 기자
안희재 인턴(고려대 사회학과 4)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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