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세계도약의 길 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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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52차 서울국제 펜 대회 결산
제52차 서울국제펜대회의 최대성과는 한국문학의 국제성 획득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36개국 2백58명의 외국문인을 포함, 1천여 명의 국내외 문인들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우선 참가자 규모 면에서 수준 급으로 평가됐다.
특히 이제껏 교류가 없었던 소련·중국·유고 등 공산권에서 대표적인 작가들이 대거 참가함으로써 한국문학도 지금까지의 서구·일본문학 일변도의 편중교류 현상을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서구보다는 동구권에서 보다 수준 높은 작가가 참가했다는 점이다.
소련의「블라디미르·카르포프」「예브게니·예프투셴코」, 중국의「펑무」(풍목)「쇼첸」(소건), 유고의「프리드라그·마트예비치」등 거물이 오게된 것은 실력 있는 작가가 작가동맹 등 국가지원 문학기구의 간부를 맡게 되고 그들이 펜의 간부가 되는 공산권 문단의 관행 때문이다.
한국을 찾은 이들 동구권 작가들은 한결같이 한국에 대해 호감을 표시하고 한국문학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폴란드 작가동맹 의장인「줄라프스키」씨는 귀국 후에 한국특집을 꾸밀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 펜 본부는 이번 대회 기간 중 한국문인들의 영역작품을 유·무료로 배포했는데 번역의 질이 떨어져 자칫 한국문학을 왜곡시킬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인권문제도 이번 대회 내내 관심을 모았던 쟁점중의 하나였다.
구속문인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한국정부에 제출함으로써 이태복·이부영·김현장·김남주·이산하등 구속문인·언론인들에 대한 관심이 환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 뉴욕 펜 본부는 국제 펜 본부와 사전협의도 없이 구속자를 위한 행사를 여는가 하면 대표자회의에서의 탄원서 제출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정도를 벗어난 행동으로 큰 반감을 사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한국의 현실에 대한 인식수준이 형편없이 낮아 함께 일한 한국작가들조차도 회의에 빠지게 했다.
인권문제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한국 펜 본부는 외국의「인권작가」에게 지나친 저자세를 취하는가 하면 투옥작가 문제 기자회견 내용을 축소,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아 한국의 인권문제에 또 다른 불쾌감을 더해주었다.
이번 대회를 치르는 동안 가장 눈에 두드러진 것 중 하나는 주최측의 행정능력 부재현상이었다. 지난 24일「프란시스·킹」국제 펜 회장 일행이 입국할 때는 한국 펜 관계자가 20분이나 늦게 나오는 무례를 범해놓고도 사과 한마디조차 없었다.
주최측은 입국 국가 수와 입국자 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반드시 올 것이라고 장담하던「솔제니친」「아서·밀러」등이 불참한데 대해서도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또 동시통역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막연히 발언자의 얼굴만 바라보는 사태가 매일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번 대회는 외국작가들이 모두 놀랄 정도로 호화판으로 치러진 것도 한 특징이다.
외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식사 때마다 코피와 토스트정도만 나오는 등 검소하게 치러지는 것이 상례인데 이번 대회는 매일 오찬 및 만찬리셉션이 열려 외국작가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초청작가 90명중 A급 61명에게는 체재비와 항공료를, B급 7명에게는 항공료를, C급 22명에게는 체재비를 지급했는데 외국의 경우는 국제 펜 본부회장단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자기부담으로 하고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이번 국제 펜 대회는 지나칠 정도로 비용을 들인데 비해 투자한 만큼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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