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이 배포한 '직권남용 해설서'…"함부로 적용하지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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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는 문무일 검찰총장. 장진영 기자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는 문무일 검찰총장. 장진영 기자

대검찰청이 직권남용죄 해설서를 만들어 일선 검찰청에 최근 배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 죄목과 관련한 유죄 판결이 늘면서 공무원 범죄에 남발되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법리와 판례를 중심으로 일종의 ‘참고서’를 제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대검의 한 간부도 최근 사석에서 “수사 검사 시절 직권남용죄로 기소한 사건의 절반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함부로 적용하기 어려운 죄목이다”는 언급을 했다고 한다.

대검 형사부, 직권남용죄 해설서 배포 #대검 간부 "함부로 적용하기 어려운 죄목" #한달 뒤, 강원랜드 수사단 대검 수뇌부 겨냥

대검 형사부(부장 이성윤 검사장)가 배포한 해설서 표지에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해설’이라고 적혀 있다. 총 60쪽 분량이다. 지난 4월에 전국 일선 검찰청과 수사팀에 배포됐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단장 양부남 광주지검장)이 문 총장을 포함한 대검 수뇌부의 ‘수사 외압’을 주장하며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 한달여 전이다.

형법 123조에 적혀 있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과 그 공범에게 적용된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①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②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경우에 성립된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태 이전에는 수사기관에서도 ‘남용’의 범위를 규정하고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 실제 사건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또 이 직권의 남용이 실제로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했는지 ‘인과 관계’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 해설서는 20쪽에 걸쳐 직권남용죄의 구성 요건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직권남용죄 적용 대상자인 공무원과 공범의 정의 ▶직권의 범위에 대한 해석 ▶남용에 대한 판단 기준 ▶의무 없는 일과 권리 행사 방해의 범위 등이다.

직권남용죄의 유죄 판결 사례로는 20건이 제시됐다. 이중에는 경찰 고위 간부가 수사팀의 내사를 중단하거나 사건을 이첩한 사건, 검찰 고위 간부가 지인의 부탁을 받고 내사 담당 검사에게 내사 종결을 지시한 사건 등이 포함됐다.

무죄 판결 사례로 적힌 10건 중에는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의 고발장 대신 작성 사례와 유사한 사건이 포함돼있었다. 다만 직권남용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피고인은 검사가 아니라 경찰관이었다. 이 경찰관은 고소인 회사에 A씨를 포함시켜 고소장을 제출하도록 했다.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압수수색과 조사 등을 통해 A의 혐의를 의심하고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판결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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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직권남용죄에 대한 해석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어 검사들에게 그 죄목의 구체적인 구성 요건과 법률적 쟁점 등을 전파하기 위해 만든 해설서였다”며 “강원랜드 조사단의 고발장 대신 작성과 유사한 사례가 있지만 그 사건에서도 경찰관이 직접 고발장을 대신 작성해 준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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