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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오페라하우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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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지만 둘 다 반대여론이 만만찮아 첫 삽 이후가 불투명하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소의 타당성을 검토한 일부 보고서가 서울시 입장만 대변한다는 비판도 있다. 5일 심포지엄에 참석한 독일의 극장 컨설턴트 게로 짐머만이 "설계 공모에 앞서 극장 컨설팅 회사의 국제 입찰 공모부터 해야 한다"고 불만을 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들섬이 과연 오페라하우스 부지로 타당할까. 좁은 땅에 오페라하우스와 심포니홀.야외음악당을 한꺼번에 지을 수 있을까. 의문제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공청회부터 열었어야 옳다. 충분한 논의가 없을 경우 낭패 보기 쉽다.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이 부지를 선정하고 개관하기까지 17년이 걸렸다. 관객들이 쉽게 찾도록 하기 위해 뒤늦게 지하철 노선을 끌어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의 전철을 밟아서도 안 된다. 예술의전당이 처음엔 서초동 대법원 자리에 부지를 확보했다가 법무부와의 힘겨루기에 밀려 우면산 기슭으로 밀려났다. 지금까지 교통 불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들섬은 어떤가. 노들섬은 한강대교(제1 한강교)의 가운데 위치한 무인도다. 강과 자동차 도로로 둘러싸여 접근이 어렵다. 노들섬의 입지 조건은 코펜하겐 오페라하우스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수변(水邊)공연장과는 다르다. 시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규모의 문화시설을 설치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청 자리에 주목한다.

서울시가 새 청사 설계안을 발표한 이후 "현재의 청사와 잘 어울리지 않으니 차라리 그 자리를 공원 녹지로 만들자"는 의견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현 시청 본관은 리모델링 후 역사박물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서울시청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지금 자리엔 본관 건물의 파사드와 골격을 활용해 서울시향 전용 심포니홀을 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음악정보센터, 서울시향 연습실, 음악도서관을 보태면 금상첨화다. 음악계에 당장 시급한 것은 상주단체도 없는 오페라극장이 아니라 서울시향의 전용 무대다. 도쿄는 도청사(都廳舍)를 신주쿠로 이전하면서 옛 청사 부지에 도쿄국제포럼이라는 공연.전시장을 지었다. 독일 부퍼탈, 미국 포틀랜드에서는 구 시청사를 개조해 콘서트홀로 꾸미기도 했다. 교통이 편리한 서울 시청 자리에 새 공연장이 들어서면 '문화도시 서울'의 상징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는 언젠가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따로 지으면 될 일이다.

오페라하우스나 신청사 건립은 후임 시장에게 넘겨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안이다. 절차가 번거롭긴 하지만 폭넓은 여론을 수렴하고 설득해가는 과정도 번듯한 공연장 못지않은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