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3시 서울 연세대 ‘한열공원’. 검은색 정장을 입은 40여 명이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31년 전인 1987년 6월 9일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가 끝내 숨진 고(故) 이한열 열사를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여기에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77)씨도 있었다. 연단에 오른 배씨는 “이 자리에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의 어머니·아버지가 계시다. 오늘은 특히 죄송하고 울컥한다”며 “나는 이 세상에 없어도 이한열이는 이 자리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해를 등진 배씨의 얼굴에 땀과 눈물이 뒤섞여 흐르고 있었다.
87년 서울 외신기자였던 킴 뉴튼(65)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도 참석했다. 킴 뉴튼 교수는 그해 7월 8일 이 열사의 영정을 든 당시 총학생회장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총학생회 사회부장이었던 배우 우현씨를 사진에 담은 인물이다. 그는 “이 열사가 최루탄에 맞은 일은 민주 항쟁의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그날을 기억했다.
연세대에서 이 열사에 대한 추모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열기로 한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국민대회’를 하루 앞뒀을 때 사고를 당했다. 그 일은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민주화 운동인 ‘6월 민주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 해 6월 29일 당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이는 ‘6·29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최근에는 영화 ‘1987’에서 배우 강동원씨가 이 열사로 분했다. 이 영화는 누적 관객수 700만명을 넘어섰다.
8일 추모제에 이어 9일에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추모 행사가 계획돼 있다. 9일은 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31년 전 바로 그 날이다. 이날 오후 1시30분에는 ‘이한열 민주화의 길’을 걷는 행사가 있다. 이 길은 신촌로터리 근처의 이한열기념관을 시작으로 이 열사의 단골 주점 ‘페드라’, 최루탄 피격 장소 등으로 이어진다. 행사에 참여하면 지나는 장소마다 이 열사와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같은 날 오후 4시에는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이한열문화제-1987, 세상을 바꾸다’ 문화제가 열린다. 연세대 83·86·88학번 동문 합창단과 고려대 86학번 합창단, 연세대 재학생 동아리 등 7개 팀이 공연을 선보인다.
문화제가 끝나자마자 오후 6시에는 ‘이한열 추모의 밤’ 행사가 이어진다. 참석자들이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한편 이한열기념관에서는 이날부터 8월 31일까지 영화 ‘1987’ 소품과 이 열사 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도 진행한다.
이번 추모행사를 총괄한 이경란 이한열기념관장은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사람들이 이 열사의 민주화·희생 정신을 이어 받고, 삶의 자세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한대·오원석 기자 cho.hand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