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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승진시험 전원합격'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황당 요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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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핵심 시정목표로 내걸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왔다. [중앙포토]

박원순 서울시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핵심 시정목표로 내걸고 관련 정책을 추진해왔다. [중앙포토]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승진 시험을 두고 민주노총 산하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사측에 '전원 합격'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구의역 사고로 정규직 전환된 직원들 #근로 기간에 따라 급수 승진 시험 앞둬 #노조 "탈락자 존재하는 시험 동의 못해" #"문제 4배수로 알려달라" 요구에 사측 난색 #공채 출신들 "특혜이자 역차별" 강력 반발

당락이 나뉘는 평가 방식이 아니라 응시 대상 전원을 승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를 계기로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고, 지난해 연말 노사가 이에 합의했다.

7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7급보→7급 전환평가 관련 중앙집행위원회 결과' 문서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 노조 측은 지난 4일 노사 협의 이후 '난이도를 아무리 쉽게 변경해도 출제 전 검증할 방법이 없다''아무리 쉽다고 해도 600여명 중 누군가는 탈락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탈락을 전제로 한 시험은 동의할 수 없다 ▶사측이 시험을 강행한다면 저지투쟁에 나설 것 등의 내부 결론을 내렸다.

지난해 합의에 따라 노사는 올해 3월 1일, 입사 3년 이상 무기계약직은 신입 공채 합격자와 같은 처우인 공사 7급으로, 경력 3년 미만 직원은 신설된 직책인 7급보로 임용하기로 했다. 7급보의 경우 입사 3년을 채우거나 매년 계획된 직무역량평가를 통과할 경우 7급 승진이 가능하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노조가 이런 합의와 달리 7급보→7급 승진 시험을 앞둔 정규직 전환직 626명의 '전원 합격'을 요구한 셈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4~5일간 관련 협의를 진행했고 노조 측에서 시험 문제나 범위 등에 대한 협의를 요구해왔다"며 "시험 문제는 공정성을 위해 외부 기관에서 준비한다. 탈락자가 없는 시험을 내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협의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사측에 "시험 문제의 4배수에 해당하는 문제은행과 합격을 위해 필요한 서적 등 시험 내용과 범위를 노조원에게 미리 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교통공사노조가 4일 사측과 협의한 뒤 내부 열람용으로 작성한 전환평가 관련 협의문서

서울교통공사노조가 4일 사측과 협의한 뒤 내부 열람용으로 작성한 전환평가 관련 협의문서

민주노총 산하인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주장에 대해 사측만 난색을 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노총 산하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와 공채 직원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합의 이후 불거졌다 잠시 가라앉았던 공사 내 노노(勞勞) 갈등마저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서울교통공사에는 2개의 노조가 있지만 서울교통공사노조는 1만2000여명이 소속된 거대 노조다.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의 조합원은 2400명으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한찬수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 1차량 본부장은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공채 출신 직원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노조 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내부 논의용으로 작성한 것"이라며 "노조 입장에서는 승진 탈락자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맞다. 우리 역시 탈락자가 아예 안 나올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신규 공채 직원은 7급으로 임용되는데 앞선 선배들이 한 직책 낮은 7급보를 달고 있으면 사내에서 불필요한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환평가 관련 논의 내용이 알려진 뒤 서노조 게시판에 조합원들이 반발하는 글을 게시했다. [서노조 게시판 캡쳐]

전환평가 관련 논의 내용이 알려진 뒤 서노조 게시판에 조합원들이 반발하는 글을 게시했다. [서노조 게시판 캡쳐]

하지만 공채 출신의 한 직원은 "지난해 교통공사 공채 경쟁률이 56대 1에 달했다"며 "취업이 어려워 올해도 최소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후배들이 공사에 들어올 텐데 모두가 합격하는 승진 시험을 본 선배들을 어찌 존중할 수 있겠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은 "6월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될 것이 뻔하니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다"며 "무리한 정규직 전환 정책의 부작용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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