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이 빈약한 문화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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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문화 올림픽 개막 1주일이 됐다.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이탈리아 스칼라오페라단의『투란도트』공연과 브라질 연극『시카 다 실바』, 동구 공산권 연극『아바쿰』(폴란드)『충돌』(헝가리) 등의 공연이 많은 찬사와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88 서울 올림픽의 흥을 한껏 돋우려던 개막 경축 음악회의 국악『표정만방지곡』연주나 옛 우리네 궁중무용『선유악』공연은 별로 입에 오르내리지 조차 않는다.
또 일부 국내 공연은「관람 공동」현상을 빚고 공연장 사용 등에 천덕꾸러기 푸대접을 받는다고도 한다.
우리 문화 역량을 총 집결, 한국 문화예술의 고유성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는 올림픽 문학예빈『전에는 이 밖에도 많은 연극·무용·음악 등의 공연과 연주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개막 전야제로 공연된『투란도트』의 떠들썩함에 비해 국내 공연이나 연주·전시회는 이렇다 할 화제를 뿌리는 것도 없고 초점이 모아진 축전행사도 아직까지는 떠오르는 게 없다. 원가 잘 못 돼가는 느낌이 든다.
만약 스칼라오페라단의 내한 공연이 축전의 초점이라면 이는「남의 떡으로 제사를 지낸 꼴」 밖에 안 된다.
더욱이『투란도트』공연은 불행히도 TV 중계나 녹화 방영이 안돼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3회 공연을 통해 1만2천 여 명이 관람했을 뿐이다.
자칫 스칼라 오페라 공연의 관람이 낡은 귀족 취미라도 자극해 속스런「문화 허위의식」을 자극했다면 큰 일이다.
분명 축전의 개최 목적과 의의는▲우리 문화예술의 세계성과 보편성 발견▲국제 문화교류의 길 개척▲우리 문화 예술의 적극적 소개▲인류 화합의 양 마련으로 돼있다.
이 같은 개최 목적과 의의는 정부 당국은 물론 행사추진 자문위원들, 축전에 참여하는 모든 민간문화 예술단체들이 거듭 강조해왔고 국민들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어쨌든 올림픽 문화예언『전은 문화잔치 치고는 큰 잔치다. 문화현상을 아직은 지수나 지표로 산출해내지 못하는 실정이긴 하지만 아마도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의 열기를 막연히 나마 지수화 한다면 요즘의 7백선을 오르내리는 주가 지수보다 훨씬 높을 듯 싶다.
이제부터라도 뜨거운 열기 속의 이 큰 잔치를 흥과 멋으로 흐느적거리다 지나쳐 버리고 마는 일과성 행사로 끝내서는 안되겠다는 다부진 다짐을 다시 해야겠다.
다짐의 첫째는 문화부가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문화예술 자체의 측면으로는 세계와 함께 비교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빌어 여러 흐름과 새로운 동향·기법 등을 과감히 받아들이고 배움으로써 질을 높이는 일이다.
특히 전통 문화의 현대화 등을 추진하는데 세계적인 보편성의 문제를 공연 현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극 분야만 해도 생소한 동구권 연극을 접하면서 그 생동감과 과감한 실험적 기법 등으로부터 상당한 자극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다음으로는 경제적 측면의 문화 부가가치다. 상품의 질을 높인다거나 고급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재질과 기술 측면 만으론 해결되지 않는다.
색상과 디자인·문양 등 문화 예술적 부가가치가 덧붙여지지 않은 상품은 결코「고급」의 품평을 받지 못한다.
다 같은 스페인 제 가죽을 사용한 지갑과 혁대이면서도 이탈리아 제나 프랑스 제가 스페인 것보다 더 고급의 취급을 받고 값이 비싼 것은 디자인·색상 등의 문화 예술적 부가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문화 올림픽은 우리 문화예술의 자체적인 질 향상과 경제에 연결되는 문화부가가치를 개발하는데 활용될 수 있는 기회가 돼야한다.
두 번 째 문제는 우리 문화예술의 전통적 고유성과 주체성의 확인이다.
우리 전통 문화가 지녀온 자랑스런 특징은 자유와 여백, 현장성 등을 손꼽을 수 있다.
우리 농악과 서구식의 고적대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질서정연한 줄 맞추기를 않는 농악은 자유로운 연희와 여백 속 관중의 포용, 들판을 무대로 하는 현장성 등으로 한껏 흥을 돋운다.
그러나 고적대의 제식적 빽빽함이나 몇 얀의 간격까지를 치밀히 계산해 공연하는 일본 무용 등에서는 이 같은 자유와 여백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우리는 한국 고유 문화의 우수성·독창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그 역량을 힘껏 발휘해 세계적인 인정을 받아야한다.
끝으로「잔치 상에 재 뿌리기」가 될지는 모르지만 축전와 초점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뮌헨 올림픽 때는 윤이상 작곡의 오페라『심청』이 올림픽 문화예술 축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뭇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았다.
도대체 이번 올림픽은 분명히「우리문화예술」이 주인으로 돼 있는데 엉뚱하게도 양념적으로 초청한 외국 공연이 압도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또 축전의 초점이 뮤지컬 아리랑인지, 궁중무용인지, 발레『심청』인지, 농악인지, 오페라 『시집가는 날』인지가 분명치 않다.
초점 행사는 세계적인 대작이 아니더라도 축전의 여러 장소에서 반복 공연·연주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히도록 해야한다.
축전의 초점과 주체성 문제는 이제부터라도 뒷날의 홈을 남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은윤·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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