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극장가 춘궁기' 3~4월 왜 이 영화들은 떴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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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달콤, 살벌한 연인'=최근 극장가에 최대 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화제작이다. 연애에는 숙맥인 대학강사(박용우)와 수상스러운 엽기녀(최강희)의 연애를 그린 로맨틱 스릴러. 처음에는 신인감독(손재곤)의 데뷔작에 스타성 없는 캐스팅, 18세 관람가라는 연령대 제한으로 흥행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제작비도 9억원에 불과한 초저예산 영화다(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는 30억~40억원).

그러나 영화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고 8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개봉 11일째인 16일에는 전국 관객 120만 명을 넘어섰다. 제작사 싸이더스FNH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열혈팬 층이 형성되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200만 돌파는 거뜬할 것으로 보고 있다. 35억원을 들여 톱스타 권상우.김하늘을 내세운 '청춘만화'가 200만 명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경제효과다.

흥행 포인트는 젊은 관객들이 원하는 새로운 감성과 어법을 담았다는 점이다. 변칙과 의외성, 농담과 가벼움이라는 젊은 세대의 문화트렌드를 파고든다. "스릴러(살인극) 뒤에 유머(코미디)를 배치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관객의 예상을 깨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장르 비틀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저예산 영화지만 예술.실험영화가 아닌 상업.오락영화를 지향한 것도 이채롭다. HD 카메라 촬영으로 제작비를 대폭 줄인 제작방식, 신인 감독의 상업적 자의식이 돋보인다.

직접적으로 '살인'이란 소재를 끌어들였지만 죄의식이나 도덕적 무게감 따위는 말끔히 덜어버렸다. 오직 상황의 엽기성을 즐기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똑같이 장르를 비틀고 엽기적 상상력을 즐기지만, 변칙에는 정치적 목적이 분명했던 '386 감독'(혹은 '386 관객')들과 확연히 갈라서는 지점이다. 34세의 손 감독은 사설 영화학교 출신으로 정규 영화교육을 받거나 연출부를 거치지 않은 '자력파'다.

◆'빨간 모자의 진실'=고전동화 '빨간 모자'를 패러디한 '빨간 모자의 진실'(이하 '빨간 모자')은 개봉 3주차인 16일까지 전국 6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직배도 아니고 관객동원력이 낮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성공이다. '빨간 모자'는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으로는 최초로 100% 더빙판으로 상영해, '지역화' 전략의 성공사례로 꼽힌다(외국인 관객을 위해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 1개 관만 한글자막을 상영하고 있다).

김수미.강혜정.노홍철.임하룡 등 목소리 배우들의 개성이 최대한 발휘된 더빙판은 완성도가 오리지널 못지않다는 평을 받았다. '더빙판은 아동용'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더빙을 통한 '토착화'를 시도한 것이 강력한 스타마케팅 효과까지 덤으로 얻은 셈이다. 그 때문에 국산 애니메이션으로 아는 관객도 많다는 후문.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원작을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워킹 타이틀'이 영화화한 작품이다. 고품격 로맨스의 강자인 양측의 명성을 재확인시켜준다. 주연배우(키라 나이틀리.매튜 맥퍼딘)의 높지 않은 지명도 등의 이유로 배급사가 예상했던 흥행수치는 20만~30만 내외. 그러나 16일까지 80만명을 돌파하며 선전하고 있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출판 시장에도 제인 오스틴 소설 붐이 일고 있다.

이 작품의 흥행은 '로맨스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로맨스물이 TV.소설 등 장르 불문 맹위를 떨치고 있는 가운데 로맨스의 거장 제인 오스틴이 국내 관객들에게 새롭게 재발견된 결과로 풀이된다. 홍보사 측은 로맨스물의 가장 큰 대상으로 떠오르는 주부 관객들의 호응이 결정적 변수라고 밝혔다.

제인 오스틴의 연애소설은 남녀관계의 미묘한 심리전뿐 아니라 권력관계이자 경제적 교환행위로서 연애와 결혼의 본질을 파헤치는 데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간 '오만과 편견'을 현대적으로 변주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비롯해 '노팅힐''러브 액추얼리' 등을 만든 워킹 타이틀은 원작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기면서 현대적 향취를 더하는 데 성공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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