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누가 기초의회를 시험에 빠뜨렸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심서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랩 기자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랩 기자

궁금했다. 얼마나 맛난 갈빗집이기에 부산 동래구의회 의장단이 3년간 1438만원 어치를 사 먹었을까. 경기도 양평군의회는 무엇을 하기에 ‘의원 체육대회’에 매년 1500만원씩 예산을 쓸까. 예산은 정해져 있는데 가평군의회 의장은 어떻게 매년 남들보다 해외출장을 3번씩 더 갔을까.

전국 226개 기초의회의 4년 치 예산서를 바탕으로 재정공시·회의록을 번갈아 점검했다. 기초의장단 업무추진비 결제 내역 37만 건은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보했다. 하나하나 퍼즐을 맞추고 나니 수수께끼가 풀렸다. 동래구의회의 단골 갈빗집은 의원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양평군의회 체육대회 비용은 의원과 담당 공무원의 운동복·신발 사는데 들어갔다. 가평군의회 의장의 해외출장 비결은 지역 의장협회비를 꼬박꼬박 세금으로 낸 덕분이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전국 기초의회의 4년 치 ‘가계부’를 들여다본 중앙일보 디지털콘텐트랩의 ‘우리 동네 의회 살림’(http:www.joongang.co.kr/DigitalSpecial/298)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 콘텐트는 출고 1주일 만에 약 100만 명이 봤다. 수수께끼를 풀 때마다 기자가 받은 충격을 독자들도 그대로 느꼈나 보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기사를 인용하며 “기초의회 업무추진비가 제대로 사용되도록 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왜 이렇게 파장이 컸을까. 지방재정법에 따르면 기초의회는 그 씀씀이를 ‘주민이 보기 쉽게’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리가 멀었다. 4년 치 의회 살림을 알려면 엑셀 파일 총 1460개를 일일이 내려받아야 하는 곳이 많았다. 예산서 1년 치가 통째로 누락된 곳도 있었다. 그것을 대신 정리했을 뿐인데, 유권자가 반응했다.

54만 원짜리 순금 배지를 맞춘 함평군의회 홈페이지에는 “금배지 예산을 책정한 회의록을 직접 찾아보겠다”는 주민 글이 올라왔다. 대구 달서구의 유권자는 의회 홈페이지에 “중앙일보에 나온 ‘새벽 1시 5분 보물섬’ 업무추진비 지출이 뭔지 해명하라”는 글을 올렸다.

‘기초의회 무용론’이나 의원의 자질 문제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기초의회 의원들이 ‘생선 맡은 고양이’가 된 것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인식 없이 예산 심의·의결권을 손에 쥐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도덕적 해이에 빠뜨린 것은 기초의회에 무관심했던 우리 유권자들인지도 모른다. 이제 ‘어차피 모를 텐데 세금 허투루 써도 되지 않을까’라는 시험에서 기초의회를 건져주자. 엿새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때 표로 보여주자. 기초의회,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