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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가마솥 18개 … 넷만 돌려도 500만명 당뇨병약 원료 생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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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지5일(현지시간)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에서 직원들이 ‘화학 반응기’에 의약품 원료를 투입하고 있다. [사진 SK바이오텍]

지난 지5일(현지시간)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에서 직원들이 ‘화학 반응기’에 의약품 원료를 투입하고 있다. [사진 SK바이오텍]

5일(현지시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 북쪽에서 13㎞ 떨어진 스워즈시. 이곳에는 SK그룹 계열 원료의약품(약효가 입증된 의약품 주성분) 제조사 SK바이오텍의 현지 공장이 있다. 공장 내 핵심 생산시설로 들어가면 건물 한 층 높이의 초대형 가마솥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솥은 제철소로 따지면 ‘용광로’에 해당한다. 용광로가 ‘쇳물’을 생산하듯, 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물질들을 이 솥에 넣고 가열·냉각 작업을 반복하면 당뇨병·항암제·심혈관 질환 치료제의 주성분들이 걸쭉한 반죽 형태로 생산된다.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은 이 장치를 사이즈별로 총 18대를 갖췄다.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 르포 #항암·심혈관 치료제 성분 뽑아내 #노바티스 등 글로벌 제약사에 공급 #유럽진출 위해 작년 1700억에 인수 #국내와 연계 원료생산 세계10위 꿈 #박준구 대표 “추가 인수도 추진”

김현준 SK바이오텍 아일랜드 공장장(상무)은 “6000L 규모 초대형 장치 4개만 완전가동해도 매년 500만명분의 당뇨병 치료제 원료를 생산할 수 있다”며 “생산된 원료는 노바티스·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에 공급한다”고 설명했다.

SK바이오텍이 아일랜드를 발판으로 원료의약품 제조사 세계 10위권(수익성 기준) 진입을 노리고 있다. 12.5%의 낮은 법인세율과 국비 지원으로 배출되는 제약·바이오 특화 인재 등 아일랜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한편, 인수·합병(M&A)을 통해 론자·패턴 등 선두권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좁혀 나간다는 방침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SK바이오텍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3대 제약 클러스터로 꼽히는 아일랜드에 자리 잡은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당시 SK는 글로벌 제약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이 원료의약품 공급처로 운영하던 아일랜드 현지 공장을 1700억원에 인수했다. SK로선 항암제 등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경험이 부족한 데다, 유럽 진출에 필요한 생산 설비가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려면, 이 공장을 인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기술력이 뛰어난 아일랜드 공장이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국내 공장이 연구·개발(R&D)과 대량 생산을 맡는 식으로 분업 체계도 구축했다.

원료의약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아웃소싱하는 제약회사들이 늘면서 글로벌 원료의약품 제조업체들의 일감이 늘어나고 있다. 제약·바이오업계에선 지난 2015년 이후 10년 동안 완제품 시장은 4.2%가량 성장하는 반면, 원료의약품 시장은 6.8%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원료의약품 생산에 집중한 SK바이오텍이 올해 매출액을 지난해(1094억원)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는 현재 세계 20위 수준의 수익성을 2020년 안에 10위권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생산시설 증설과 추가 M&A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박준구 대표. [사진 SK]

박준구 대표. [사진 SK]

박준구 SK바이오텍 대표는 “아일랜드 공장 인수로 고품질 항암제 원료 제조 기술도 확보하게 됐다”며 “아일랜드와 국내 공장(대전·세종) 설비를 동시에 증설해 매년 100만L 규모를 생산하면, 2020년 안에 글로벌 10위권 진입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향후 원료의약품을 넘어 완제품까지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기 위해 새로운 인수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아일랜드 제약·바이오 클러스터에는 SK바이오텍 뿐만 아니라 화이자·로슈·사노피 등 60여곳의 글로벌 제약사들이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낮은 법인세율과 연구개발비 37.5% 세액 공제 등 파격적 혜택도 있지만, 현지 공장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전역 90여개의 제약·바이오 생산공장 중 33곳 이상이 미국 식약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이곳에서 약을 생산하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으로의 판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국적 제약사들은 지난 10여년 간 약 100억 유로(12조5000억원)를 이곳에 투자했다. 클러스터 조성으로 아일랜드는 2만5000여명의 고급 일자리 창출 효과도 누리고 있다.

조이스 핏즈해리스 SK바이오텍 전략팀장은 “아일랜드는 정부가 나서서 제약·바이오 기술에 특화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기 때문에, 진출한 해외 기업이 인재 교육에 별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곧바로 현지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스워즈(아일랜드)=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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