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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맥도널드 '알바'가 CEO 돼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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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30년 전 가족의 손에 이끌려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가난한 소년'이 번듯한 사업가가 돼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에서 요즘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는 봉제 완구 체인점 '빌드어베어워크숍(BUILD-A-BEAR-WORKSHOP)'의 한국 내 독점 사업권을 따낸 박영서(43.사진)사장이다.

1976년 미국 워싱턴 근교에 둥지를 튼 가족의 수중에는 3달러 60센트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먼저 정착한 친척집에 눌러 살며 허드렛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겠다는 각오였다. 가족은 소년과 어머니.외할머니.외삼촌 이렇게 넷이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몰랐다. 어머니에게서 "네가 아주 어릴 때 월남전에서 숨졌다"고 들은 게 전부였다. 당시 14세이던 그가 구사할 수 영어는 '예스'와 '노'뿐이었다. 박 사장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그냥 '노'라고 답했다고 했다. 기 죽지 않기 위해 그가 미국에서 처음 익힌 영어는 '두 유 워너 파이트(Do you want to fight)'다. 박 사장은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는데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맥도널드로 달려가 고기를 구우며 한푼 두푼 모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길거리 장사를 했다. 스무살이 넘어 직장을 얻었다. 워싱턴의 일본 자동차 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첫해에 미국 내 영업사원 중 판매실적 2위에 올랐다. 입사 1년 반 만에 부장(manager)으로 진급했다. 그러다 워싱턴에서 세탁소를 열어 독립했다. 리츠칼튼 등 대형 호텔 12곳의 유니폼 세탁을 도맡아 사업은 쑥쑥 컸다. 이를 발판으로 건물 청소 회사와 건축업체까지 차렸다. 이 세 업체의 매출을 합치면 줄잡아 연간 1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박 사장은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벌일 새로운 사업을 찾았다. 빌드어베어워크숍은 지난해 6월 딸과 쇼핑몰에 갔다가 처음 봤다. 일반 봉제 완구점과는 달랐다. 어린이가 직접 인형을 만들어 이름을 짓고 출생증명서까지 받아 나오는 완구점이었다. 그는 무릎을 쳤다. 바로 빌드어베어워크숍 본사와 접촉했다. 마침 이 회사는 한국에서 사업할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박 사장은 이민와서 살아온 자신의 얘기를 써 본사에 보냈다. 5분만 만나겠다던 그 회사 회장은 박 사장의 인생 스토리를 한 시간 넘게 들었다. 600명이 넘는 지원자 중 박 사장이 낙점됐다. 미국에서 운영하던 건축업체는 최근 정리했다. 세탁.건물 청소 업체는 직원에게 맡기고 올해 초 한국에 왔다. 자신의 영어 이름인 '레이'를 따서 '레이베어'라는 법인을 국내에 세웠다. 오는 30일 분당에 1호점을 연다. 박 사장은 자신의 명함에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CEB(Chief Executive Bear)'라고 명함에 쓰고 다닌다. 곰 인형에 인생을 걸겠다는 뜻이다. 지금은 가족 중 혼자만 한국에 있다. 박 사장은 "빌드어베어가 자리를 잡으면 한국에 모두 들어온다. 여기가 조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권혁주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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