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판사들 “성역 없는 수사” 고법 판사들 “수사 부적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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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으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양승태 코트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대한 형사처리 문제를 두고 젊은 판사들과 중진급 이상 판사들이 4일 시각차를 드러냈다. 젊은 판사들은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한 반면 부장판사급으로 이뤄진 서울고법 판사회의에선 이번 사태가 수사로 확대되는 것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 50여명은 이날 정오부터 2시간이 넘게 회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회의 직후 낸 결의문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직기간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재판 독립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다”며 “관련자들에 대해 성역없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해서는 “향후 수사와 그 결과에 따라 개시될 수 있는 재판에 관해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판사 20명도 이날 판사회의 직후 “철저한 수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한다”고 가세했다. 이들은 “법원행정처는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 드러난 미공개 파일 원문 전부를 공개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도 요구했다. 인천지법 단독판사들도 “특별조사단 조사결과 드러난 모든 의혹에 대해 수사 등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한다”는 결의문을 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대응 온도차 #서울중앙지법·가정법원 판사회의 #“미공개 파일 공개, 진상 규명해야” #서울고법 판사회의선 “재발 방지” #수사 촉구 안건은 부결시켜

이날 서울남부지법·대구지법·인천지법에서도 판사회의가 열렸다. 각 법원에서 직급별 판사회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것은 지난달 31일 김 대법원장이 “각계의 의견을 종합해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고자 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반면 중진급 이상 판사들로 구성된 서울고법 판사회의에선 수사 촉구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다만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우려와 재발 방지를 결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판사는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앞두고 대표회의 측이 각급 판사회의에 제안한 의결 안건에는 ‘성역 없는 엄정한 수사 촉구’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이는 부결했다”고 말했다. 법원 내에선 5일 열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 7일 예정된 전국법원장 간담회 등에서도 수사 신중론이 제기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법원 내 ‘세대 갈등’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법원 내부에서도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7일부터 1박2일로 잡혀있던 대법관 워크숍은 취소됐다.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사법행정 및 재판 관련한 안건을 논의하고 법원행정처로부터 현안 등을 보고받는 자리였으나 취소된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마당에 워크숍 갈 때가 아니라고 보고 대법관들이 먼저 취소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김 대법원장은 4일 출근길에 일부 대법관이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는 보도(중앙일보 4일자 12면)와 관련해 “그날(1일) (대법관들이) 걱정하는 것을 듣는 입장이었다. 의견 차이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일훈·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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