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가난의 추억'득표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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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랏빛에서 변모=5.31 지방선거에 나서는 여야의 유력 후보들이 앞다퉈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을 부각하고 있다. '가난의 추억'을 파는 '서민 마케팅'이 새로운 득표전략의 트렌드로 떠오른 것이다. 같은 당 경기지사 후보로 확정된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재산이 165억원인 그는 정보기술(IT) 업계의 성공신화로 불린다. 서울대를 졸업한 미국 스탠퍼드대 박사로 삼성전자 CEO를 거쳤으며 세계 최초로 16MD램을 개발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나를 부잣집 아들로 보는데,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했고, 고교 땐 판잣집에서 살았는데 그집마저 철거당하는 아픔을 겪었다"고 말한다.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이계안 의원도 100억원대의 재력가다. 현대중공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46세에 현대차 사장에 오른 뒤 현대카드.현대캐피탈 CEO를 지냈다. 그는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보내는 e-메일에서 "중학생 때 도시락을 싸갈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한나라당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3인의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모두 '가난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서울시장 후보에 도전장을 낸 홍준표 의원은 거물급 인사를 줄줄이 구속시켰던 강골의 '모래시계 검사' 출신이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나 돌아가고 싶다'에서 "중.고교 때는 도시락을 싸갈 수가 없어 점심 때가 되면 늘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지금 뼈가 가늘고 살이 없는 것은 어릴 때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난 지금도 보리밥에 질려 쌀밥만 먹는다"고 했다. "1972년 대구에서 1만4000원을 들고 서울역에 상경했다"는 얘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같은 당 서울시장 예비후보인 맹형규 전 의원은 방송사 앵커를 지냈다. "어렸을 적 검정고무신만 신고 다니다 운동화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워 어머니를 졸랐더니 처음으로 흰 고무신을 사줬다"며 "상가(喪家)에 가면 일하는 사람이 귀찮을까 봐 남이 먹던 국과 밥을, 남이 쓰던 숟가락으로 먹곤 한다"고 한다.

오세훈 전 의원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 매 끼니를 라면으로 때운 적이 있다. 그때 달동네인 삼양동에서 직접 블록을 만들어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고 회고했다. TV방송 진행자를 거친 세련된 변호사의 이미지와는 잘 연결되지 않는 추억담이다.

사법시험 16회에 수석 합격해 특수검사로 이름을 떨쳤던 민주당 박주선 전 의원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다. 그는 자서전 '다시 피는 인동초'에서 "달걀 행상을 하던 어머니가 피를 뽑아서 받은 돈 1100원으로 보성중(전남) 입학금을 냈다"고 적었다.

◆ 유권자 시장이 달라졌다='가난의 추억'을 파는'서민 마케팅'은 유권자 시장의 변화를 반영한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깨지고, 지역대결도 점차 옅어지면서 유권자들의 선택기준이 경제 이슈나 개인의 성공 스토리 같은 보다 소프트한 주제로 옮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 서민이란 용어가 본격 등장한 것은 2002년 대선 때부터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대결은 귀족 후보 대 서민 후보란 흐름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전 국민이 가난했던 60, 70년대나 고도 성장기엔 서민 이미지로의 차별화가 필요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경제 침체기엔 상대적인 빈부격차가 크게 느껴지고 유권자들은 서민의식에 눈을 뜬다"고 말한다. 양극화 이슈가 유권자 시장을 변모시켰다는 얘기다. 대형 정치이슈가 소멸하면서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 드라마를 일군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것도 이 같은 트렌드가 출현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갤럽의 허진재 팀장은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이 어떻게 서민의 어려움을 알겠느냐는 유권자의 인식과 맞아떨어지면서 서민후보를 선호하는 경향을 띠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정책 콘텐트의 빈약함을 보완하기 위한 이미지 정치의 한 형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정민.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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