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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자기 표현 강해질수록 주얼리 시장 커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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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호 22면

피아제 여성 CEO 셰비 누리

까르띠에·예거르쿨트르 등 럭셔리 시계·주얼리 브랜드를 보유한 리치몬트 그룹이 2017년 4명의 CEO를 교체했다. 요한 루퍼트(Johann Rupert) 회장의 결단이었다. 당시 그는 “프랑스 출신의 중년 남자들로는 더 이상 안 된다”며 그룹 내 다양성을 내세웠다. 본보기는 피아제(Piaget)였다. 그룹 내 시계·주얼리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여성 CEO를 발탁한 것이다. 주인공은 셰비 누리(Chabi Nouri·44). 1998년 까르띠에에 입사, 브리티시 아메리카 담배사의 ‘보그’ 글로벌 디렉터를 거쳐 2014년 피아제로 돌아온 3년 만에 이뤄진 내부 승진이었다.

‘최초의 여성 CEO’라는 꼬리표에 신임으로서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클 만한 상황. 하지만 정작 그는 생뚱맞게도 ‘서니 사이드 오브라이프(Sunny Side of Life)’ 라는 문구 하나를 선보였다. 지난달 10일 서울 압구정동 K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에서도 같은 문구가 타이틀이 됐다. 참석차 서울에 온 그를 만나 좀 더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니 사이드 오브 라이프’가 대체 뭔가.  
“새로운 컬렉션의 이름 같은 게 아니다. 브랜드의 철학을 압축한 표현이다. 햇빛 아래서 느끼는 활기 같은, 여유롭고 긍정적인 삶의 방식을 뜻한다. 앞으로 우리가 벌이게 될 일들의 근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플랫폼’이라는 게 더 정확하다. 이번 행사만 해도 이 문구에 맞춰 전시장 자체를 잠시 휴가를 온 듯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문구는 어떻게 나왔나.  
“취임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브랜드의 헤리티지부터 파고드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피아제가 다른 브랜드와 다른 가장 큰 매력은 바로 ‘태도’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긍정(Yes to Life)’이었다. 1874년 설립 당시 시계 무브먼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였고, 세계 1·2차 대전을 겪었지만, 직원과 직원, 고객들과의 관계에서 ‘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정서는 바뀌지 않았다. 자체 시계 브랜드와 주얼리까지 만들게 된 건 이 힘이라고 여긴다.”  
제품 자체보다 문구에 비중을 두는 이유가 뭔가.  
“지금까지 마케팅·홍보·세일즈·고객관리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경험하면서 눈에 보이는 매출과 숫자만큼 중요한 게 ‘브랜딩’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브랜드가 어떤 이미지를 지닐 것인가, 어떻게 표현하고 소통할 것인가에 따라 제품의 창의성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뿌리가 결국 ‘서니 사이드 오브 라이프’ 같은 플랫폼이다. ‘보그 시갈렛’에서도 이같은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개발한 경험이 있다. 특히 한국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시장에서는 더욱 필요하다.”
실제 제품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치나.  
“물론이다. 대표 컬렉션인 포제션(Possession)의 경우 이번 시즌엔 좀더 가지고 놀 수 있는(playful) 디자인으로 거듭났다. 시계의 베젤이나 뱅글·목걸이의 양끝 장식이 돌아가도록 한 본래 디자인 외에도 시계 스트랩과 주얼리의 보석 컬러를 다양하게 늘렸다. 또 목걸이·팔찌 모두 여러 개를 자유롭게 조합해 멋을 낼 수 있는 스타일을 지향하려고 한다. 이것이 요즘 주얼리 트렌드이기도 하고.”  
최근 주얼리 트렌드에 대해 좀 더 설명한다면.  
“주얼리라고 해서 가격에만 구애받지 않는다. 가령 예전에는 가격이 낮은 건 엔트리 제품이면서 젊은 층이 대상이고, 반대로 하이 주얼리는 고가이니만큼 연령대가 있고 충성 고객을 공략한다고 이분화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연령이나 브랜드 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사고 실제 착용할 때도 섞어 즐긴다.”  
달라진 트렌드가 밀레니얼의 소비 패턴과 일맥상통한다.
“정확하게 맞다. 우리 역시 기존 고객과 함께 이들 세대에 비중을 둔다. 이미 2012년 업계에서 처음으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글로벌 온라인 편집숍인 네타 포르테의 여름 프로모션에 주얼리 브랜드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럭셔리는 직접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고 하지만 소비자의 구매 습관은 이미 온라인이 더 편한 쪽으로 달라지고 있다. 옷이나 가방을 오프라인에서 실물을 확인하고 온라인에서 사는 이들이 일반화됐는데, 주얼리나 시계도 마찬가지가 돼 가고 있다.”  
지난달 10일 열린 피아제 프레젠테이션 행사

지난달 10일 열린 피아제 프레젠테이션 행사

피아제는 지금껏 시계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여성 CEO로서 주얼리를 부각하게 됐나.
“전혀 아니다. 누가 이 자리에 왔어도 같았을 것이다. 시계의 축소가 아니라 주얼리를 확장한다고 보면 된다. 최근 주얼리 시장이 시계보다 늘어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6년 스위스 시계 수출액이 10% 하락한 반면, 주얼리 시장은 7.5% 성장했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 많아지면서 시계 시장이 커졌다면, 이제는 자기 표현이 강해지면서 주얼리 시장이 커진다고 볼 수 있다.”  
다양성을 이유로 발탁된 자리라 부담이 없나.  
“사실 비슷한 질문을 수없이 받았지만 다양성을 꼭 성별의 문제라고만 보지 않는다. 문화적 배경, 국적, 인종 등이 모두 포함되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브랜드는 젊은 리더십을 필요로 했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고려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2017년 피아제 여성 CEO로 취임한 셰비 누리

2017년 피아제 여성 CEO로 취임한 셰비 누리

그럼에도 여성 리더로서 강점을 찾는다면.  
“우리 직원들이 말해주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웃음). 개인적인 바람은 지속가능성이다. 브랜드가 잘 유지되는 것 외에도 직원들이 오래도록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도 20년, 30년, 혹은 40년씩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서니 사이드 오브 라이프’같은 플랫폼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나.” ●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피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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