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담판' 1박2일…공은 김정은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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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ㆍ미가 합의를 하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번 기회를 흘려버리는 것은 비극과 다름없다.”

실질적인 진전 있었지만 합의엔 못미쳐 #폼페이오 장관, 김정은 위원장 결단 촉구 #트럼프, 김영철 통해 김정은 친서 받고 #12일 싱가포르 회담 공식 발표할 듯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 롯데팰리스호텔에서 북미 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 롯데팰리스호텔에서 북미 회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밝힌 결론은 ‘김정은의 결단’이었다.

‘세기의 담판’으로 기록될 다음달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뉴욕 회담’을 거치며 9부 능선에 도달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만이 남았다는 설명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차례 회동, 김영철 부위원장과의 세차례 회담을 통해 미국이 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어떤 개념인지를  분명히 밝혔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여야 '완전한 체제보장(CVIG)'과 경제적 번영을 지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상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합의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 회담.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진행된 북미 고위급 회담. [AP=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사흘간 뉴욕-판문점-싱가포르에서 삼각편대로 진행된 협상에 대해 “실질적인 진전이 이뤄졌다”면서도 “그러나 아직 많은 일이 남아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서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가 합의에 이르려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과감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김 위원장이 그러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다”며 김 위원장의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어 “앞으로 수주 또는 수개월간 우리는 그것(김 위원장의 결단)이 이뤄질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6.12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고위급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6.12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고위급 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북한으로부터 확실한 비핵화 약속을 받았나’라는 질문에 “상당히 어려운 이슈이고,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며 확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비핵화 대상을 탄도미사일을 포함한 "핵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라고 규정한뒤 “미국 정부의 목표는 북한 정부를 설득해서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몇십년간 계속되어온 난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미국 정부는 놀라지 않을 것이며 좌절하거나 겁에 질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최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강하고(strong), 연결된(connected), 안전하고(secure), 번영한(prosperous) 북한의 모습을 상상한다”고 말하며 'SCSP'로 요약되는 북한 미래의 4대 키워드를 제시했다.

‘strong’은 체제 안전보장 약속과 경제적 번영을 통해 북한이 진짜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강조하는 단어이고,  ‘connected’는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 따라 고립된 ‘은둔의 왕국’으로 전락한 북한을 지구촌 국제공동체의 일원으로 연결해줄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0일 저녁(현지시간) 맨해튼 고층빌딩에서 마련한 환영만찬에 앞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에게 창밖의 뉴욕 스카이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미국 국무부 제공]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달 30일 저녁(현지시간) 맨해튼 고층빌딩에서 마련한 환영만찬에 앞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일행에게 창밖의 뉴욕 스카이라인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미국 국무부 제공]

폼페이오 장관은 전날 김영철 부위원장과 만찬에서도 뉴욕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며 북한의 ‘더 밝은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제 관심은 김영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로 쏠리고 있다. 친서에 내달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를 바라는 김정은의 의사와 함께 비핵화 의지가 어느 정도 담겼는지가 핵심이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폼페이오 장관과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곧바로 숙소로 들어간 뒤 외부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김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는 계획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오전 워싱턴 인근의 앤드루스 공군기지에서 전용기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그들은 금요일(6월 1일) 워싱턴으로 와서, 김정은 (위원장) 편지를 나에게 전할 것으로 믿는다”면서 “나는 편지에 뭐라고 적혀있는지 보길 고대한다”고 답했다.

김 부위원장은 한국시간으로 2일 새벽 2시쯤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할 전망이다. 김 부위원장과 같은 북한 고위급의 백악관 방문은 지난 2000년 10월 조명록 당시 국방위 제1부위원장 겸 군총정치국장(인민군 차수) 이후 18년 만이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연합뉴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연합뉴스]

미국 언론들도 김 부위원장의 백악관 방문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친서 내용이 상당히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폼페이오 장관이 마련한 각본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친서를 받아보고 싱가포르 회담을 당초 예정대로 6월 12일에 개최한다고 발표할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계속 발신하고 있다. 그는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다음달 12일 열리길 희망한다”고 밝히면서, “나는 회담이 의미있기를 바라며 그건 한 번의 회담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걸 뜻하지 않는다. 아마 두 번째, 세 번째 회담을 해야할 지 모른다”고도 말했다. 다음달 싱가포르 회담이 당일치기로 끝나지 않고 하루이틀 더 연장되거나 이후 2차, 3차 정상회담이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올인원(All in one)’을 주장하며 한번에 모든 핵무기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핵무기 폐기는 물론 검증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현실을 감안해 일정한 단계를 두되 최대한 속도를 내는 속전속결식 비핵화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이를 두고 북한식 단계적 비핵화와 절충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로이터통신에 “북한 비핵화에는 미사일도 포함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북·미간 협상에서 핵 폐기와 더불어 핵무기를 미국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도 일거에 해결하겠다는 의미다. 미국내 대부분의 대도시를 사정권에 두고 있는 북한 ICBM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큰 골치거리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요구에 대한 성의 표시로 ICMB부터 폐기하고 일차적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은 일찌감치 제기돼왔다. 이 경우 북·미간 주고받기가 ICBM폐기란 가시적 성과에 그치고 핵 물질, 핵 개발 프로그램 등 북한의 핵무기 능력 완전 제거에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뒤따른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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