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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최저임금 딜레마’…자영업자 달래려다 지지층 반발에 내분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0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를 방문했다가 1시간 동안 옴짝달싹 못하는 수난을 당했다.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 여야가 국회 본회의에서 정기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길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울산시의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로부터 최저임금법 개정에 대해 항의받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울산시의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로부터 최저임금법 개정에 대해 항의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일을 겪은 홍 원내대표는 이튿날인 31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하나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정책의 집합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며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포함된 항목을 통상임금과 연결시키는 문제를 반드시 우리 당에서 제대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항목이 늘어나면 노동계가 오히려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노동계의 반발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최근 가석방돼 출소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최저임금법) 개정 과정을 보니 노동자 약자 편에 선 사람이 국회 안에도 소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노동위원회 “깊은 실망과 분노”

민주당의 내홍도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는 전날 국회에서 “최저임금법 개정에 깊은 실망과 분노를 감출 수 없다”고 기자회견을 했고, 한국노총 소속인 이수진 노동위원장은 전격 사퇴했다. 이 자리를 주선한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 이용득 의원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라 당을 나올 수도 없고 답답하다”는 말까지 했다.

민주당이 난처한 건 최저임금 때문에 일종의 딜레마 상황에 빠져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공약했던 건 노동계와 20·30대 청년층 등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이른바 ‘J노믹스’로 불리는 소득 주도 성장을 기치로 내걸고 최저임금도 급격히 올렸지만 오히려 양극화는 심화됐고, 최저임금 언저리의 임금을 받는 취약계층 상당수는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게다가 인건비 부담이 커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원성은 커졌다.

결국 경제에 주는 부담을 줄이고,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최저임금법을 개정하는 카드를 꺼냈지만 이번에는 핵심 지지층이 반발하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런 상황은 여론조사 결과로도 나타난다. 리얼미터가 지난 28~30일 조사해 31일 발표한 5월 5주차 주중집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전주에 비해 4.9%포인트 내린 50.8%로 나타났다. 7주 만에 가장 낮은 지지율이었다. 리얼미터는 “대구·경북과 20대, 진보층과 보수층에서 하락 폭이 큰 가운데 보수층 일부는 자유한국당으로, 진보층·중도층과 20대 일부는 정의당으로 이탈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그 이유로는 한국당 홍문종·염동열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과 함께 ▶민주당의 최저임금법 개정안 찬성 ▶소득 양극화 지표의 악화 등을 꼽았다.

민주당, 7주만에 가장 낮은 지지율…“지지층 일부 정의당 이탈”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 역시 71.8%로 답보했다. 리얼미터는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 이하와 60대 이상에서는 내렸다”며 “이러한 하락세는 소득 양극화 심화 등 최근 확대되고 있는 민생·경제 관련 부정적 보도가 일부 영향을 미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낙연(오른쪽) 국무총리, 김동연(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걷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낙연(오른쪽) 국무총리, 김동연(왼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걷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 “소득 분배 악화, 매우 아픈 지점”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양극화와 최저임금 관련 발언을 내놨다. 지난 29일 가계소득 동향 점검 회의에선 “소득 하위 20%의 가계소득 감소 등 소득 분배의 악화는 우리에게 매우 아픈 지점”이라고 했고,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선 “저임금 근로자의 고용이 줄거나 근로시간이 줄어들어 소득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일 수 있다”고 했다.

지방선거 직전에 이런 논란이 돌출된 데 대해 일부 민주당 의원은 “지방선거 이후 법을 개정해도 됐을텐데 굳이 미리 한 건 정무적 판단이 부족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선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예로 들며 “장기적으론 잘한 일”이란 반응이 나온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중진 의원은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잃는 표도 있겠지만 얻는 표가 더 많다고 본다”며 “한·미 FTA 때도 지지층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지금 보면 결국 잘한 일 아니었느냐”고 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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