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경쟁력] 생각만 해도 끌린다 브랜드는 유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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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컴퓨터 왕국' IBM은 1993년 한창 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PC)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주력 제품인 대형 컴퓨터 시장이 위축됐다. 사상 처음 적자를 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브랜드 이미지였다. 사업 부문 별로, 심지어 제품 별로 서로 다른 로고를 쓰다 보니 로고 종류가 800개가 넘었다. 세계 최대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에선 사업부마다 27군데 부스를 차려놓고 제각기 경쟁했다.

새로 회사를 맡은 루이스 거스너 회장은 단순 컴퓨터 제조회사에서 종합 서비스 컨설팅 회사로 전환한다는 구상 아래 우선 브랜드 이미지 통합에 나섰다. 속도와 역동성을 표현하는 가로 줄무늬의 표준 로고를 제정했다. 70개가 넘던 광고대행사를 일원화해 전 세계에 내보내는 광고도 통일했다. 광고와 마케팅 예산을 두 배로 늘려'e-비즈니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전파했다. 이런 노력 끝에 IBM은 2000년 대에 들어 컴퓨터 및 네트워크 분야를 다시 평정할 수 있었다.

브랜드는 물건을 팔기 위한 껍데기가 아니다. 회사 운명을 좌우하는 생존전략의 핵심이다. 세계적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인 인터브랜드가 매년 미국의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를 통해 발표하는'글로벌 100대 브랜드'순위가 이를 보여준다. 코카콜라.마이크로소프트.IBM.인텔.노키아.도요타 등 지난해 조사에서 상위를 차지한 10개 기업 중 말보로를 제외한 9개가 기업명과 제품명이 같은 이른바 기업 브랜드였다.

국내 기업들도 근래 브랜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고 힘쓰고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계기로 삼성이 펼치는 올림픽 마케팅이 대표적 사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글로벌 브랜드의 국가별 성장률을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국내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 성장률이 프랑스.스위스 등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00대 브랜드에 포함된 회사가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세 군데에 불과하지만 잠재력은 뛰어나다는 얘기다.

한국생산성본부가 17일 내놓은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는 우리 기업들이 지난 한 해 브랜드 마케팅을 어떻게 했는지 보여주는 성적표다. NBCI는 기업의 마케팅 활동으로 형성된 브랜드 인지도와 이미지 등을 100점 만점으로 지수화했다. <표 참조>

18개 제품군에서 71개 대표 브랜드를 뽑아 점수를 매긴 결과, 15개 분야 16개 제품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1위 자리를 고수했다. 현대자동차의 NF소나타,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애니콜, LG전자의 에어컨 휘센, 제일모직의 캐주얼 의류 빈폴, 태평양의 프리미엄 여성 화장품 헤라 등이다. 그러나 휴대전화와 가스레인지를 제외한 전 분야에서 1위 제품의 점수가 지난해보다 하락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좀더 필요한 것으로 평가됐다. 올해 처음 조사한 등산복 분야에서는 K2코리아의 K2와 FnC코오롱의 코오롱스포츠가 공동 1위를 했다. 제품군별 NBCI 평균 점수는 맥주(74)와 김치냉장고.에어컨아파트.프리미엄 분유.화장품(이상 71점) 등이 높아 다른 분야보다 브랜드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MP3 플레이어(64).등산복(66).노트북 컴퓨터(67) 등은 점수가 낮은 편이었다.

나현철 기자

◆ 어떻게 평가했나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는 한국생산성본부 브랜드경영센터가 2003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조사.발표하고 있다. 상반기엔 제조업, 하반기엔 서비스업을 평가한다. 이번 조사는 자동차.가전제품 위주로 구성된 18개 제품군, 71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포함됐던 약주와 디지털 카메라가 빠진 대신 등산용품이 추가됐다. 조사 대상 브랜드는 해당 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이 높은 5개 브랜드를 선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단 ▶브랜드 수가 5개 미만인 경우는 모든 브랜드를 조사하고▶시장점유율 차이가 거의 없을 경우엔 일정 수준 이상 브랜드를 모두 포함시킨다. 지난 2월 6일부터 3월 10일까지 38일 동안 서울.부산.대구.대전.광주 등 5대 광역시의 10~50대 남녀 4만102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이 중 해당 브랜드를 직접 써 본 소비자는 9940명, 써보지 않은 소비자는 3만1080명이었다. 조사는 브랜드 별 마케팅 활동과 브랜드 인지도, 이미지, 소비자와의 관계 구축, 구매 의도 등을 조사원이 직접 방문해 묻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나현철 기자

◆ 한국생산성본부 브랜드경영센터는 5~6월 서비스업에 대한 국가브랜드경쟁력지수(NBCI)를 조사한다. 조사 결과는 8월께 발표한다. 올해 조사는 19개 서비스군에서 75개 브랜드를 대상으로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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