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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규제에 갇혀 중국 뒤통수만 바라보는 4차 산업혁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주력 산업이 구조적 성장 한계에 부닥친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4차 산업혁명뿐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전문가를 대상으로 4차 산업혁명 기술 수준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0이라면 중국은 108, 일본은 117, 미국은 130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은 조사 대상 12개 분야 중 블록체인과 인공지능(AI), 우주 기술, 3차원(3D) 프린팅, 드론 기술에서 한국을 30~40%나 앞선 것으로 평가됐다. 더구나 5년 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은 좌절감마저 안겨 준다. 한국 경제를 두고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노동력 사이에 끼인 ‘호두 신세’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제 기술에서도 중국의 뒤를 밟아야 할 판이다.

마침 어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관련 세미나가 있었다. 여기서 장석영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지원단장은 “2030년까지 국내 지능정보 분야에서 8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도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등 13개 혁신 성장동력에 2022년까지 9조원가량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다.

세계 최강 수준의 반도체 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4차 산업혁명의 지진아 신세다.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핀테크·드론·원격진료 등 분야에서 숱한 기술이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성, 사업 의욕을 꺾는 규제 앞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과 그럴듯한 장밋빛 전망도 무용지물이다.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기회 있을 때마다 반복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라는 이름의 국가 전략을 내걸고 질주하고 있다.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에 갇힌 한국은 그저 중국의 뒤통수만 바라보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