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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원하는 건 리비아 아닌 파키스탄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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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북미간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북한이 원하는 방식은 리비아 모델이 아닌 어떻게든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는‘파키스탄 모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빈국으로서 그동안 핵무기 개발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온 북한으로서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제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 뒤에 세워둔 안내판에 북한의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화성-14형'의 '핵탄두(수소탄)'이라고 적혀있다. [연합 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현지지도했다고 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 뒤에 세워둔 안내판에 북한의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화성-14형'의 '핵탄두(수소탄)'이라고 적혀있다. [연합 뉴스]

도미닉티어니 미국 스와스모어 칼리지(Swarthmore College ) 정치학교수는 26일(현지시간) 시사지 애틀랜틱 기고를 통해 “북한의 완전한 핵 포기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리비아 등의 전례를 고려할 때 대신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은 핵무기를 얻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며 “그들이 원하는 결과는 파키스탄이지 리비아는 아니다” 분석했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27일 북한이 평화협정을 원하는 이유가 기본적으로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수립하고 외부 침공의 가능성을 줄이는 한편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과 같은 국제기구에 접근하기 목적도 있지만 모든 것이 핵무기 보유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파키스탄이 1970년대 본격 핵 개발에 돌입한 것은 인접 경쟁국인 인도 때문이다. 후일 총리가 된 파키스탄 정치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는 당시 “만약 인도가 핵폭탄을 갖게 되면 우리는 설사 풀잎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핵무기를 쟁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1998년 차가이 지역 산악지대에서 알라신을 찬양하며 일련의 핵실험을 단행했다.

파키스탄은 그렇게 핵보유국이 됐다. 핵과학자회보(BAS)는 파키스탄이 2016년 기준 130~140개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했다. 2025년엔 핵무기 규모가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파키스탄은 여기에 운반수단으로 중거리 탄도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 F-16 전투기, 그리고 전투지역에서 사용 가능한 단거리 전술시스템 등을 보유하고 있다.

티어니 교수는 파키스탄과 북한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두 국가 모두 인도와 한국이라는 강력한 민주국가와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들 나라는 한때 같은 나라였다 분리됐다. 북한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고, 파키스탄은 가입하지 않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북한과 파키스탄은 핵개발 과정에서 협력하기도 했다. 2006년 미 의회 조사국에 따르면, 북한은 미사일 기술을 파키스탄에 전수하고 파키스탄은 북한에 핵기술을 전달했다. 북한은 1990년대 대기근을 겪는 상황에서도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 기술 전수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파키스탄은 물론 핵 개발을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교육이나 보건 분야에 투입했어야 할 예산을 쏟아 넣었다. 1998년 핵실험은 국제사회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NPT 가입을 거부한 후 민수용 핵기술의 수입이 금지됐다.

티어니 교수는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서 서방은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면서 “미국이 지금도 파키스탄에 수십억 달러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제공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담 후세인과 무아마르 카다피는 모두 그들의 선택을 했고, 둘 다 죽었다”며 “북한은 다른 길을 가고 싶어한다. 동아시아의 파키스탄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전망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는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북한이 “2017년까지 핵 무력을 완성하고 2018년 초부터 조선도 핵보유국의 지위를 공고화하는 평화적 환경 조성에 들어가야 한다. 인도·파키스탄 모델을 창조적으로 적용, 핵보유국으로 남는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적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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