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탐(探) … 탐(耽) … 탐(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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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탐(探)은 더듬어 찾는다는 뜻이다. 탐구.탐색하고, 탐문.탐방하고, 탐사.탐험하는 것이 모두 탐(探)이다. 이런 탐(探)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인간의 생활은 훨씬 척박하고 건조해지지 않았을까도 싶다.

탐(探)이 생산적.긍정적 에너지라면 탐(耽)은 좀 얘기가 다르다. 탐(耽)은 좋아함이 지나쳐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 대상이 글이나(耽讀) 성현의 도(耽道)일 수도 있겠지만 애당초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것(過猶不及)'이고, 탐(耽)의 대상 또한 대부분 주색(酒色)이나 잡기(雜技) 같은 소모적.부정적인 것들이었기에 늘 경계의 대상이 되어왔다.

하지만 정말로 문제되는 탐(耽)은 그 대상이 자기 자신이 될 때다.

얼마 전 닛케이 비즈니스(4월 3일자 특별편집판)에서 흥미있는 기사를 봤다. 이 잡지는 '경영자의 부정은 왜 일어나는가'를 밝히기 위해 1988~2004년에 전 세계적으로 최고경영자가 직.간접적으로 간여해 벌어진 부정사례 중 액수가 큰 24개 기업(월드콤.엔론 등)과 동종업계 비슷한 규모의 대표적 기업을 골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상당한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했던 기업 지배구조(회장직과 CEO의 분리, 사외이사 확대, 감사위원회 설치 등)와의 연관성은 나타나지 않은 반면 명성에 대한 집착,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만심 등은 상관관계가 아주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부정행위를 벌인 CEO들의 경우 고정급보다는 상여금.스톡옵션 같은 성공보수가 훨씬 많고, 주요 비즈니스지에 호의적으로 인용된 사례가 훨씬 잦으며, 비현실적으로 높은 성장목표를 내거는 비율 또한 훨씬 높았다. 능력은 단기간에 부와 명성을 주었지만, 이런 성공은 스스로를 전능한 신으로 착각해 버리는 이른바 갓 신드롬(God syndrome)으로 이어졌다. 어느 순간 현실의 벽이 막아섰을 때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다시 탐(探)하지 못하고 스스로에 탐(耽)했고, 결국엔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부와 명성을 탐(貪)하는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탐(耽)은 기본적으로 개인적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이것이 탐(貪)으로 이어질 때 그 피해는 수많은 사람에게로 확산된다.

스스로에 탐(耽)해 개인적으로 나락에 빠지고, 사회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끼친 사람들이 어찌 기업가들뿐이겠는가. 요즈음 여러 정치인의 행로(行路)에서도, 황우석 사태에서 보듯 학계에서도, 나아가 속된 마음을 구제해야 할 종교의 영역에서조차 우리는 크건 작건 탐(耽)과 탐(貪)의 불행한 이중주(二重奏)를 듣고 있다. 자신에 대한 믿음(自信)이야 필요한 것이지만, 스스로를 턱없이 크게 여김(自大)은 허망하며 위험하다.

인간이기에 오욕칠정(五欲七情)은 다 버릴 수 없겠지만, 탐(探)이 탐(耽)에서 탐(貪)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벗기 힘든 짐이지만, 돌아온 봄을 찾듯 가끔은 스스로를 더듬고 찾았으면 싶다.

'명예와 부귀가 헛되이 사라지는 길을 직접 따라가 그 끝을 지켜보면 탐욕이 저절로 가벼워진다(功名富貴 直從滅處 觀究竟, 則貪戀自輕)'. 만해가 91년 전에 썼던 '한용운 채근담 정선 강의'를 최근 성각 스님이 새로 추려 번역한 '한용운 채근담'의 한 구절이다.

박태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