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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덜컹거리는 북핵 가도 … 정확한 한·미 소통이 해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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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순탄했던 북핵 해결 가도가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북한이 맥스선더 한·미 연합훈련 등을 이유로 몽니를 부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까지 입에 올렸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남측 취재는 허용, 미국의 대북 불신 남아 #남측 지렛대 삼으려는 북 의도 경계해야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들으라는 건지 지난 22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모두발언에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선언했다. 이런 말이 나오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브리핑룸으로 달려와 “북한과의 정상회담은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며 진화에 나섰다고 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21일 미국행 비행기에서 “북·미 정상회담은 99.9% 성사된 것으로 본다”고 장담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북한이 ‘완전한 핵 폐기(CVID)’를 받을 뜻이 없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지도 않겠다는 얘기다. 이는 트럼프가 며칠 전 문 대통령에게 “북한이 왜 갑자기 강경하게 나오느냐”고 전화로 따진 것과 맥이 닿아 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북·미 간 대화가 본격화되긴 했지만 북한에 대한 의구심이 말끔히 가시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맥스선더 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김정은 체제 비판을 빌미로 불거졌던 북한의 몽니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인다는 점이다. 방북이 거부됐던 남측 풍계리 핵실험장 취재단이 23일 마침내 원산행 비행기로 떠나 이날 도착했다. 무산되는 듯했던 남북 고위급 회담도 맥스선더 훈련이 끝나는 25일 이후 열릴 것 같다는 전언이다.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 자신이 제안한 일인 만큼 북한이 판을 깰 위험은 작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간의 행태로 미루어 북한은 틈만 생기면 갖은 생떼를 부릴 가능성이 남아 있다. 최근의 몽니도 미국과의 빅딜을 앞두고 한국을 압박해 자기 뜻을 관철할 지렛대로 삼으려는 작전으로 보인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북한의 의도에 끌려가지 않도록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북측 계략에 말려들면 우리 정부가 북한 이익만 대변한다는 미국 측 오해를 살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엇보다 미국과의 정확하고 솔직한 소통에 힘을 쏟아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과거에 실패해 왔었다고 이번에도 실패할 것으로 미리 비관한다면 역사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고 한 주장은 옳은 인식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이 실현되려면 치밀한 계획과 행동이 필요하다. 최근 북·미 간에 난기류가 흐르는 건 양쪽 모두에서 강온파 간 갈등이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볼턴과 폼페이오, 북한의 김영철과 김계관은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중간에 선 우리로서는 북·미 내부의 미묘한 변화에도 적절히 대응해 평화적 북핵 해결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