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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몽니에 먹구름 낀 이산가족 상봉, 지금 준비해도 일정 빠듯

중앙일보

입력

지난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상봉을 마친 가족들이 눈물로 작별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상봉을 마친 가족들이 눈물로 작별하고 있다. [중앙포토]

북한이 지난 19일 탈북 여종업원 송환 문제를 꺼내들며 내세운 창구는 ‘적십자회 중앙위원회 대변인’이었다. 적십자회는 이산가족 상봉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탈북 여종업원 문제로 이산가족 상봉 계획에 어깃장을 놓겠다는 북한의 의도가 녹아있는 셈이다. 북한은 여종업원 송환 문제를 사건 발생 후 부터 줄곧 제기해오다 남북 관계 개선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올해 1월부터는 제기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두 정상이 만나는 생중계 모습을 대전 중구 평안남도 도민회 이산가족들이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두 정상이 만나는 생중계 모습을 대전 중구 평안남도 도민회 이산가족들이 바라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산가족 상봉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4월27일 만나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도 적시된 사항이다. “오는 8ㆍ15를 계기로 이산 가족ㆍ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고 날짜까지 명기했다. 이산가족 상봉이 별탈 없이 열릴 수 있으리라고 정부가 내다봤던 배경이다. 이산가족 상봉 준비엔 남북 적십자 회담에 이어 행정적 절차 등에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까지 20차례 열린 전례를 종합하면 최소 2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도 걸린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5월말인 지금 당장 시작해도 빠듯한 일정인 셈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남북정상회담 직후 기자들에게 “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은 준비에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에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 중의 하나”라고 말한 배경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북한의 태도 변화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북한은 16일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고위급 회담도 당일 새벽에 급작스럽게 취소했다. 고위급 회담의 주요 의제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포함한 판문점 선언의 로드맵 구상이었다. 북한이 여기에 제동을 걸고 나선데다, 이어 19일엔 적십자회를 통해 탈북 여종업원 송환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8ㆍ15 이산가족 상봉엔 먹구름이 드리웠다. 북한 적십자회 대변인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판문점 선언에 반영된 인도주의적 문제 해결 전망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한 이산가족의 자녀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에서 기존에 등록된 북한 원적지 주소를 수정하기 위해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한 이산가족의 자녀가 17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에서 기존에 등록된 북한 원적지 주소를 수정하기 위해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마지막 이산가족 상봉은 2015년 10월 20~26일 금강산에서 열렸다. 그 해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사건 이후 남북이 만나 4일간의 회담 끝에 내놓았던 8ㆍ25 합의의 결과였다. 당시 공동보도문은 “올해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했다며 “이를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9월 초에 가지기로 하였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상봉 준비 절차에 시간이 빠듯해 결국 상봉이 성사된 건 그해 추석(9월26~29일)을 약 한 달 넘긴 시점이었다. 상봉 대상자 규모를 정한 뒤 선정과 생사 여부 확인, 상봉 의사 확인 등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런 행정적 절차를 준비하는데 북한 측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판문점 선언을 지키기 위해선 상봉 규모를 대폭 줄이거나 연기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의 여종업원 송환 요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조명균 장관은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대한민국 국민들을 돌려보낸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선 22일 워싱턴에서 열릴 한ㆍ미 정상회담이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북한이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내놓을 반응에 상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갑자기 여종업원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이 문제를 의제화시키겠다는 의도”라며 “그러나 여종업원 전원이 송환 의사를 밝히지 않을 경우 북한에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북한에게도 여종업원 송환 문제가 양날의 검일 수 있다는 얘기다. 고 교수는 “북한도 한ㆍ미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반응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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