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법 저지는 가문의 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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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민주당의 대표적 중진인 그는 지난해 하원을 통과한 반(反)이민 법안에 맞서 친(親)이민 법안을 주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손잡는 모험도 불사했다. 케네디-매케인 법안의 핵심은 12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 체류자에게 합법적으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안은 상원 법사위안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 하지만 법사위안이 상원 전체회의에서 부결되자 케네디 의원은 양당을 오가며 중재에 나서는 등 교착상태 타개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가 40여 년 전 상원의원이 된 뒤 처음 제출한 주요 법안은 이민 법안이었다. 90년 이민 쿼터를 대폭 확대하는 법안을 제안해 현실화시킨 것도 그였다.

케네디의 이 같은 활약이 부각되면서 미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가와 이민법의 인연이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를 두고 "이민이라는 주제는 케네디가에서 면면히 내려온 것"이라고 12일 전했다. 이민을 규제하는 집단과의 투쟁은 개인의 신념을 뛰어넘어 가난한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집안 차원의 가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이민사의 주요 고비에는 언제나 케네디 집안 사람들이 있었다. 그 유래는 케네디 의원의 외할아버지인 존 F 피츠제럴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츠제럴드는 하원의원 시절인 1897년 이민 희망자에게 시험을 치르게 해 문자 해독 능력이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자는 '문맹 시험법안'에 강력히 반대했다. 당시 남.동 유럽 출신의 빈민층이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의회에 반이민 정서가 팽배했다.

케네디 의원의 형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도 이민법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상원의원 시절 서유럽 이외의 지역 출신자의 이민을 엄격히 제한한 쿼터제 폐지를 추진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하던 남부 출신 의원들이 "어떻게 아프리카 출신과 영국 출신을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던 때였다.

대통령이 된 존 F 케네디는 결국 63년 당시로선 획기적으로 인종차별적 요소를 삭제한 이민법 개혁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 법은 케네디가 암살당한 뒤인 65년 발효됐다.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이 법안이 발효된 이후다.

한편 이민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면서 강경했던 공화당의 기류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빌 프리스트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11일 지난해 말 하원을 통과한 반이민법 중 불법 체류자를 중범죄자로 단속하는 내용을 철회할 뜻을 비췄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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