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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인화의 경영자’ 구본무 LG 회장의 빈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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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영자에 대한 평가는 기업과 분리될 수 없다. 좋은 경영은 조직문화를 바꾸고 기업을 성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제 별세한 구본무 LG 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룹 매출은 1995년 구 회장 취임 당시 30조원대에서 2017년 160조원대로 5배 이상 늘었다. 그룹 이름을 글로벌 감각에 맞게 ‘LG’로 바꾸고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지주회사 체제로 바꾼 것도 구 회장이었다. 보수·안정적인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1등’ ‘초우량 기업’ ‘승부 근성’을 강조하며 변화를 주도했다. 지금은 그룹의 주력사업이 된 디스플레이·2차전지·통신사업에 대한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도 그의 업적이다.

대기업 오너였지만 격식을 차리지 않는 소탈한 성품의 경영자였다. 주말에 장례식장을 비서 없이 혼자 조문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고, 공식 행사나 출장을 갈 때도 수행원 한 명만 단출하게 대동하곤 했다. 자녀의 혼례는 ‘작은 결혼식’으로 치렀다. 육군 현역으로 군대에 가고, 그룹 계열사 과장으로 입사해 실무부터 익히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절 다른 재벌 후계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마지막도 그랬다. 연명 치료를 원치 않았고, 장례도 소박하게 치러진다. 구 회장의 뜻에 따라 장례는 비공개 가족장으로 하고 조문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LG그룹은 형제간 재산 다툼이나 정경 유착 스캔들에 거의 연루되지 않았다. 창업동지였던 GS그룹과도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요즘처럼 반기업 정서가 판을 치고 대기업들이 조리돌림당하는 시대에 LG만큼 ‘오너 리스크’가 적은 기업은 드물다. 한국 재계에 갑질 파문만 있는 게 아니라 구 회장 같은 인화(人和)의 경영자도 있었던 것이다. 어느 때보다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기업가가 아쉬운 시대에 그가 떠난 빈자리가 더욱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