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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값 절약에 생계 달려, 밤샘 운전 탓 지병 달고 살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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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11면

19년차 화물차 기사 동행 취재

19년차 화물차 기사인 김유신씨가 자신의 차를 몰고 울산 시에서 경기 시흥시를 향해 가고 있다. 운전석 옆에는 세면도구는 물론 상비약과 먹거리, 조리도구 등이 있다. 김씨는 한달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차에서 숙식을 하며 지낸다. [이수기 기자]

19년차 화물차 기사인 김유신씨가 자신의 차를 몰고 울산 시에서 경기 시흥시를 향해 가고 있다. 운전석 옆에는 세면도구는 물론 상비약과 먹거리, 조리도구 등이 있다. 김씨는 한달의 절반 이상을 자신의 차에서 숙식을 하며 지낸다. [이수기 기자]

지난 17일 오전 2시. 중앙SUNDAY는 서울산 톨게이트(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 앞에서 25t 화물차 운전기사인 김유신(39)씨와 만나 밤샘 동행하며 화물차 기사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다. 2001년부터 화물차를 몬 그가 말하는 화물차 기사는 ‘누구의 사랑이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가정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다. 김씨의 목소리를 통해 화물차 기사의 삶을 전한다. 이날 김씨는 5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렸지만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단 한 번도 차를 세우지 않았다.

밤낮 바뀌고 한 달 절반은 외박 #운전석 공간이 침실이자 식당 #값 후려치고 대놓고 과적 요구 #대기업 화주가 인심 더 사나워 #차·기름값 뛰는데 화물값은 내려 #올해만 버텨보자 생각으로 일해

나는 화물차 기사다. 도시와 도시 사이를 항해한다.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선택한 일이 올해로 19년째다. ‘화물차 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 집이 있다’는 말이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다. 그새 결혼도 하고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까지 얻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텃세가 심했다. 화물을 고정하는 ‘깔깔이 바’의 사용법조차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하기야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도 않았으니. 처음엔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 매달 임대료를 내는 ‘월대(月貸)’로 일했다. 지금 차는 내 7번째 ‘동지’다. 그땐 몸은 힘들어도 일감이 많았다. 힘든 만큼 돈이 되는 시절이었다. 요즘은 그냥 힘만 든다. 오늘은 울산에서 화학제품 소재를 받아 경기도 시흥으로 간다. 23t의 짐을 300㎞ 넘게 옮기고 받는 돈은 45만원이 전부다.

집에 가져가는 돈 월 300만원 밑돌아

세월이 지날수록 화물값이 내려간다. 좋을 땐 한 달 매출이 1100만~1200만원에 달했는데 요즘은 700만~800만원 벌기도 바쁘다. 이런저런 비용을 제하고 집에 가져가는 돈은 월 300만원이 채 안 된다. 화물차 기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화주들의 화물값 후려치기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하는 차값으로 당구장이나 식당을 내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번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준다.

내 일터는 전국이다. 화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오늘은 시흥시까지 왔지만 내려갈 화물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원하는 방향으로 화물이 나오지 않으면 기다릴 수밖에. 빈 차로 내려갈 때 도로비나 기름값은 온전히 내가 부담해야 한다. 일감이 줄어든 탓에 언제부턴가 ‘장재물(규격 초과 화물)’도 가리지 않고 받는다.

자신의 25t 화물차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씨. [이수기 기자]

자신의 25t 화물차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씨. [이수기 기자]

한 달의 절반은 외박이다. 집 근처로 가는 화물을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다. 대신 외박이 많으면 마음은 가볍다. 적어도 일감이 있다는 얘기니까. 지난주에는 충남 당진에서 전남 화순을 거쳐 5일 만에 집에 들어갔다. 친지 경조사를 챙기는 건 애당초 포기했다. 날짜나 요일 개념도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운전석은 내게 사무실이자 호텔이고 식당이다. 옆에는 작은 서랍장도 갖다 놨다. 각종 상비약이며 수건 등 생활용품을 넣어두는 나만의 ‘장롱’이다. 휴대용 버너와 컵라면·생수는 기본이다.

속상한 일도 많다. 이골이 날 때도 됐건만 화주나 지게차 기사와의 시비는 늘 부담스럽다. 예전 어떤 화주는 ‘약속 시간보다 늦었다’는 이유로 한 시간 가까이 모욕을 줬다. 아이 분유값이 아쉽던 시절이라 화를 삼키고 용서를 빌었지만 조롱은 계속됐다.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화주 중 일부는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짐을 늦게 내려준다. 10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다. 대놓고 과적을 요구하는 화주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화물값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 대기업에서 발주한 화물도 이런 일이 많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화물차 기사에게 밤잠을 못 자는 건 숙명이다. 심야 시간 도로비는 낮 시간의 절반이고 뻥 뚫린 도로를 달리면 기름도 아낄 수 있다. ‘기름을 얼마나 아끼느냐’는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다. 운전하다 졸릴 땐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예전엔 담배나 초콜릿 등으로 잠을 쫓곤 했는데 나이 40이 되기도 전에 당뇨에 걸린 뒤로는 몸에 나쁜 건 최대한 피하려 한다.

화물차 일의 시작은 기다림이다. 택시나 대리기사처럼 화물차 운전기사용 앱을 보고 있다가 가격이나 행선지가 맞는 화물이 뜨면 잽싸게 클릭해야 한다. 진짜 ‘0.1초의 승부’다. 오후까지 일감을 따내지 못하면 초조함은 배가 된다. 일이 없으면 집에 가기도 힘들다. 그래서 화물차 일을 두고 ‘기다림 반, 운전 반’이라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일감을 따낼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으니 잠자는 시간도 일정치 않고 스트레스도 크다. 화물차 기사 중 세 끼를 다 챙겨 먹는 이가 거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물차 기사들은 모두 지병이 하나씩은 있다. 변비는 기본이다. 변이 마려울 때마다 휴게소에 가기 힘들어서다.

과적? 화주에게 과태료 물리면 단숨 해결

선뜻 이해하기 힘든 규제들은 가뜩이나 힘든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한다. 화물차 차고지 증명제가 대표적이다. 화물차 기사 대다수는 등록 차고지가 아닌 자신이 집 근처나 도로변에 차를 댄다. 그러다 보니 밤샘주차(박차) 과징금을 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졸음운전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차를 대놓고 편히 쉴 곳은 턱없이 부족하다. 화물차 휴게소가 전국에 50개나 될까. 4시간 운전한 뒤 30분을 의무적으로 쉬도록 한 것도 현실성이 없다. 그럼 돈은 언제 벌라는 말인가. 차라리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휴식을 정하는 게 현실적이다. 제도를 만들 땐 현장의 목소리를 좀 들어보면 좋겠다.

과적 화물차를 줄이고 싶다고? 하나도 안 어렵다. 화물차 운전자가 내도록 한 과적 과태료를 화주가 내도록 하면 단숨에 문제가 해결될 거다. 화물값 결제도 한두 달 뒤에나 이뤄지는 게 기본이다. 오늘 배달한 값은 빨라야 다음달 말이나 돼야 나온다. 하기야 화물차 기사 일에는 정부도, 국민도 관심이 없다. 너무 관심을 못 받는 직업, 그래서 더 힘들다.

물론 좋은 일도 있다. 2014년엔 꿈에 그리던 내 집을 마련했다. 82.5㎡(25평)짜리 방 세 개가 있는 빌라다. 일감 부족 문제가 당장 해결될 것 같진 않지만 늘 ‘올해만 더 버텨 보자’라는 생각으로 일한다. 오후 4시30분. 울산으로 향하는 일감을 어렵게 잡았다. 충남 당진에서 화물을 받아 18일 오전 1시까지 갖다 줘야 한다. 화물값이나 하차 시간 모두 마음에 드는 조건은 아니다. 그래도 빈 차로 다니는 것보단 낫다. 난 그렇게 전국을 누빈다. 그러면서도 최대한 가족 곁에 머물려고 한다. 그게 내 원칙이고 목표다.

울산·시흥=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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